서울 동대문구의 경동시장. 뉴시스
서울 동대문구의 경동시장. 뉴시스


올해 초 정부가 역대 최대 수준의 재정을 투입했으나, 민생 회복은 굼뜨기만 하다. 가구 소득은 감소하고 소비는 정체하고 있다.

26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경기 개선을 위해 재정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었으나 1분기 가계 살림살이는 악화했다. 물가 상승만큼 소득이 늘지 못하면서 1분기 가구 실질소득은 7년 만에 가장 큰 폭(-1.6%)으로 줄었다. 실질 소비지출도 제자리걸음이다. 지출액은 3.0% 늘었으나 결국엔 물가 상승분이다. 이에 따라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큰 적자가구 비율(26.8%)은 2019년 1분기(31.5%) 이후 5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정부는 올해 초 민생 회복을 위해 ‘역대급’ 재정을 투입했다. 올해 3월 정부 총지출은 85조1000억 원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였다. 올해 1∼3월 누적 기준(212조2000억 원)으로도 가장 많다. 결국 역대 최고 수준의 재정 집중집행과 더불어 어려운 세수 상황이 맞물려 재정 수지 악화가 발생했다. 1∼3월 국세 수입(84조9000억 원)은 3월 법인세 수입이 5조6000억원 줄어든 탓에 1년 전보다 2조2000억 원 감소했다. 세수 비중이 큰 대기업은 작년 영업손실로 올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결국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3월까지 75조3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민생 회복이 굼뜬 상황에서 산적한 중장기 과제는 재정 당국의 고민을 더 무겁게 한다. 모두 상당 수준의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지난 달 ‘내년 역대 최대 수준의 R&D 예산’을 약속한 데 이어 지난 23일 8조 원의 재정 지원을 포함한 26 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방안도 내놨다. 출산율 제고 정책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런 과제들은 상당 부분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다. 더 이상의 재정 수지 악화를 막겠다는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사업 재정 지원분 8조 원 중 내년 예산 반영분은 같은 수준의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확보할 수 있다. 지출 구조조정은 효율적인 예산안 편성을 위해 필요한 절차 중 하나다. 하지만 올해는 재정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시행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건전재정’ 목표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재정 소요에 대응하려면 재정 투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장기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사업 중 재정 집행 효과가 큰 세부 사업에 먼저 재정을 투입하면 단기적인 경기 회복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종호 기자
허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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