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의 노력만으로 대규모 누적 적자를 더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 “현재 미수금 규모는 전 직원이 30년간 무보수로 일해도 회수가 불가능해 마치 벼랑 끝에 선 심정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이 지난 16일,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22일 각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 당국에 조속한 요금 인상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간 침묵을 지키던 우리나라 대표 에너지 공기업 수장들의 이례적 읍소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실제로 기하급수적 수준으로 늘고 있는 두 기관의 빚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전례 없는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함께 한전에는 2021∼2023년 연결 기준 43조 원의 대규모 적자가 쌓였다.
총부채는 203조 원으로 지난 한 해에만 이자비용으로 4조5000억 원이 빠져나갔다. 가스공사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외상값’ 개념인 미수금은 사실상 영업손실로 볼 수 있는데, 올 1분기 가스공사의 민수용 도시가스 미수금만 13조5000억 원에 달하고 연말이면 14조 원대로 치솟을 전망이다. 가스공사의 지난해 연간 이자비용 역시 1조7000억 원이나 된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지난해 이자로 쓴 돈만 6조 원을 웃도는 셈이다.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던 굴지의 에너지 공기업들이 졸지에 빚더미에 올라앉아 존폐를 걱정하는 이유는 원가 대비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요금 때문이다.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은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해 원료값이 올라가면 요금도 따라 올리게 돼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가계와 기업 부담을 줄이겠다며 인위적으로 요금 인상을 억제했다. 에너지 위기로 국제유가 등 에너지 원료값이 급격히 뛰었지만,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2021∼2022년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인상률은 21.1%에 그쳤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가 702.7%, 영국이 173.7%, 독일이 46.5%, 일본이 44.4% 인상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자원 부국인 호주의 절반 수준이고 영국보다는 70% 저렴하다. 가스요금도 비슷하다. 2022년 이후 국제 LNG 가격은 약 200% 상승했지만, 이 기간 국내 가스요금은 약 43%만 인상됐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인상 요인을 자체적으로 흡수한 덕분에 국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한전이 자체 분석한 결과,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판매한 덕분에 2022∼2023년 46조 원의 가처분소득 보전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시 덜었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처분소득 보전 효과는 한전 누적 적자 규모와 비슷하다. ‘조삼모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가스요금은 난방 수요가 적은 여름철, 전기요금은 냉방 수요가 적은 겨울철을 앞두고 각각 적정 수준 올리며 요금 정상화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전기요금을 ㎾h당 1원 인상할 때 해소되는 한전 적자 규모는 5500억 원에 불과하고, 가스요금도 MJ당 1원 인상 시 미수금이 5000억 원 회수되는 수준이다. 한 번 망가진 재무 상황을 단시간에 개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억지로 억누르지 않도록 요금 책정의 구조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