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국제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여전한 측근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의 에피소드는 4000개가 넘는다. 하루에 두 번씩도 올리는 메인 에피소드는 26일(현지시간) 3638회까지 업데이트됐다. 그는 2019년부터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온갖 가짜뉴스와 함께 기성 정치권에 대한 거친 비판을 쏟아낸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의 기성 정치인 역시 배넌의 거친 언사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234년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 이뤄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을 두고 스티브 배넌의 작품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5월 추진됐던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 대한 당내 강경파 의원들의 축출 시도 배경에도 배넌이 있었다. 비록 7개월 전과 달리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아 존슨 의장의 해임안 처리는 무산됐지만, 그는 팟캐스트에서 존슨 의장이 처리한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안보 예산 패키지 법안을 ‘신성모독(a desecration)’이라고 평가하며 팟캐스트 청취자들에게 의장을 해임시키기 위해 의원들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 의원들에 대해서는 ‘보수의 원칙을 고수했다’고 극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월 배넌에 대해 여타 정치 전략가처럼 51%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존 정당과 연합을 추구하는 대신 기존 정당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정의하고 싶어 한다고 썼다. 이 과정에서 ‘위선적인’ 민주당만큼이나 공화당의 기성 정치인 역시 ‘공격 대상’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 세계적인 걱정거리인 포퓰리즘 정치, 양극화 정치, 반(反)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제3 진영의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했다. 양극화 정치에 기댄 극우·극좌 정당들이 득세하고 이들이 내건 포퓰리즘 정책이 정치적·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정치에 대한 불만은 민주주의의 약한 고리를 깨고 터져 나온다. 정당의 취약한 자생력, 급변한 정치 문화와 기존 제도 사이의 괴리를 타고 한국에서는 정당 정치를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저서 ‘혐오하는 민주주의’에서 이 같은 전 세계적 흐름이 한국에서는 ‘팬덤 정치’로 나타났다고 분석하며 ‘계층이나 이념에 기댄 현상이 아니라 누가 당권을 가지고 누가 공천을 받고 누가 대선 후보가 돼야 하는지를 둘러싼 당내 전쟁에서 비롯된 바가 절대적’이라고 썼다.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은 팬덤과 민심의 괴리가 심각한 수준이다. 당의 체력은 점점 떨어져 자가호흡도 쉽지 않아 보이지만, 차기 당 대표를 누가 할지를 두고 또 싸울 태세다. 팬덤 정치가 더 극적으로 작동하는 곳은 야당이다. 지난 총선 때 ‘내가 후보를 고른다’는 효용감을 맛본 당원들은 더 많은 ‘선택권’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정당한 당원의 권리는 더 보장돼야 하지만, 당원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만은 없는, 헌법기구인 의원의 역할도 있다. 일관된 당론만큼이나 의원들의 다양한 주장이 모였을 때 발현되는 힘도 있다. 그러나 모두 그저 ‘당원들 말이 맞다’고만 되뇔 뿐이다.

민병기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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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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