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한의 Deep Read - 3국 정상회의 성과와 과제

역대급 강화한 한·미·일 협력 토대로 對中 ‘관리’… 한·미·일이 ‘중심축’, 한·일·중은 ‘보조축’
‘北 비핵화’ 합의 없었지만 북·중·러 연대에서 ‘中 분리’ 효과… 국익 극대화 노력 이어져야


실로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한·일·중 정상의 만남이었다. 2019년 12월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회의 이후 4년 5개월 만에 한·일·중 정상회의가 27일 서울에서 개최됐다. 코로나 사태에다 한·중 관계 및 한·일 관계 악화로 3자 정상회의가 오랫동안 개최되지 못하다 이번에 재개된 것이다.

이번 만남의 가장 큰 의미는 3국 정상회의의 정상화다. 3국이 어렵게 대화를 재개했으니, 마냥 순탄치는 않더라도 만남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의의 정상화

이번에 한·일·중 정상회의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강화된 한·미·일 관계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이 공고화되고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한·미·일 협력이 역대급 수준으로 강화됐다. 중국으로선 가장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가 현실화한 것이다.

그전까지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협의체인 쿼드(Quad)도 있었고, 미국·영국·호주 간 오커스(AUKUS)도 있었지만, 가장 높은 수준의 군사동맹인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최상위 수준의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재탄생한 것은 중국에 심각한 ‘전략적 도전’이었다.

대만해협·동중국해·남중국해로 대표되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현상 변경’을 꾀하고자 하는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연대라는 예기치 못한 장벽을 만난 것이고, 결국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 역시 미국과의 동맹, 더 나아가 3국 간 안보협력을 최상위 수준으로 올려놨으니,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은 북·러 군사협력이 심화하는 가운데 북·중·러 삼각 연대로부터 중국을 분리해 내야 한다. 실질적 분리가 가능하진 않겠지만,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 내심 못마땅한)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들과 회담을 갖는 모습은 북·러 모두에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한·일·중 정상회의가 개최된 27일 밤에 북한이 군사위성 발사라는 전략적 도발을 한 것은 미국의 동맹국들과 만난 중국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는 3국 협력 그 자체보다는 복합적인 전략적 고려가 이면에서 작동했기 때문에, 내용보다 상징성에 좀 더 비중이 두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핵화 인식차

예상대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인식차가 드러났다. 3국 공동선언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자 재강조했다’고 명기한 것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 관해 한·일과 중국 간 입장 차를 좁히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정상회의 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북한 비핵화’를 언급했지만, 리창(李强) 총리는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 악화를 예방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거리감을 노정했다. 리 총리는 주로 한·미·일의 자제를 촉구하려고 한 발언이었겠지만, 그가 말한 ‘관련 측’에 북한과 러시아도 포함되므로, 북·러 모두 (북한은 러시아에 탄약과 미사일을 지원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ICBM과 원자력추진잠수함 등 전략무기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위험한 거래’를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북핵 문제를 미·북 간에 풀라고 얘기하던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한 2017년 이후엔 미·중 관계라는 큰 맥락에서 북핵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북핵-대만-남중국해 ‘연계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즉 북한 문제에 관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려면 미국이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일정한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태평양 지역에서 제해권을 반세기 이상 장악해 온 미국으로선 중국의 이러한 전략적 셈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3국은 인적교류, 기후변화, 경제통상, 보건, 과학기술, 재난구호 등 비전통적 분야에서 협력의 방향성과 구체적 방안을 도출했다. 특히 환경, 경제, 보건 분야는 한·일·중이 향후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자리 잡았다. 3국 정상 모두 2023년 11월에 개최된 제24차 3국 환경장관회의에서 공동합의문을 채택한 것을 환영하면서, 8대 우선 협력 분야에서 3국 간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중심축과 보조축

경제 분야에서 3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속도를 높이기 위한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고, 공급망 교란을 피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3자 회의에 하루 앞서 개최된 한·중 양자회담에서 ‘한·중 수출통제 대화체’가 출범했고, 이와 더불어 ‘한·중 공급망 협력조정 협의체’와 ‘한·중 공급망 핫라인’을 함께 가동하면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다. 사드 사태 때 한국이 중국에 당하고 있는데도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미국은 한·미·일 정상회의는 물론 인·태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에서 외부의 ‘경제적 강압’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공급망 리스크 관리체계 확립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일이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우려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미국 주도의 집단방어체계에 적극 참여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한국 안보전략의 중심축이라면, 한·일·중 대화는 보조축이다. 한·미·일은 북한에 대한 억제와 방어뿐만 아니라 역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동시에 한·일은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서 중국이 한·일을 이간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이들을 분리해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하여 중국이 향후 서태평양 지역에서 무리한 현상 변경을 시도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일·중 정상회의는 차기 미 행정부가 한·일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같은 ‘무리한’ 재정적 요구를 할 때, 미국을 ‘부드럽게’ 견제할 수 있는 ‘연성 균형(soft balancing)’ 기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전략적 과제

미국의 동맹국들이 중국과 대화를 하는 것이, 중국과의 대화를 단절한 채 동맹의 미래를 논하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한·미·일 중심축과 한·일·중 보조축을 잘 활용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향후 전략적 과제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 용어 설명

‘한·미·일 협력’은 3국 정상이 2023년 8월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진행한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협력체계.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하는 3각 안보체제를 이뤄냈다고 평가됨.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이란 중국이 거대시장을 무기 삼아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것. 한국을 상대로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며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을 발동한 게 그 예.

■ 세줄 요약

정상회의의 정상화 : 한·일·중 정상회의는 역대급으로 강화한 한·미·일 협력이 토대가 돼. 중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전략적 도전’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고, 한·일 역시 對中 관계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 생겨.

의미와 성과 : 가장 큰 의미는 3국 정상회의의 정상화. 북 비핵화는 ‘한·일 vs 중국’ 구도를 보였지만, 공급망 리스크 관리를 포함해 인적교류, 기후변화, 경제통상, 보건 등 분야에서 협력의 방향성과 구체 방안이 도출됨.

중심축과 보조축 : 한·미·일 안보협력이 한국 안보전략의 중심축이라면, 한·일·중 대화는 보조축. 한국은 한·일·중 정상회의를 對美 ‘연성 균형’ 기제로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향후 국익 극대화를 위한 노력 이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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