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브루크너 ‘바그너 교향곡’

바그너 찾아가 헌정의사 밝혀
초연땐 난해해 관객들 퇴장도
자리지킨 말러 감명받아 편곡
1악장의 ‘금관의 향연’ 인상적


건강을 위한 최고의 이동 수단은 단연 ‘비엠더블유’(BMW)다. 버스, 메트로(지하철), 워킹의 앞글자를 조합해 만들어낸 말이다. 그런데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의 ‘비엠더블유’(BMW)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 작곡가인 브루크너(Bruckner), 말러(Mahler), 바그너(Wagner)를 일컫는 말로 진지한 클래식 애호가들이 평생을 두고 깊이 있게 추구하는 대표 음악가들이다.

세 작곡가의 공통점은 음악의 규모가 장대하고 난해하지만, 한 번 길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중 요즘 가장 핫한 작곡가가 있다. 그의 음악만을 추종하는 마니아를 일컫는 ‘브루크네리안’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급부상한,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안톤 브루크너(1824∼1896)다.

1872년 브루크너는 깊은 존경심을 넘어 경외심마저 품고 있던 바그너를 만나기 위해 독일 바이로이트를 찾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교향곡 중 한 작품을 바그너에게 헌정하기 위해서였다. 브루크너는 바그너에게 자신의 교향곡 두 작품, 이미 완성된 ‘교향곡 제2번’과 아직 작곡 중이던 ‘교향곡 제3번’을 내보이며, 바그너가 흡족할 만한 작품을 직접 택해 줄 것을 청했다. 바그너는 아직 미완의 작품이긴 했지만 ‘교향곡 제3번’을 헌정 받을 것을 약속했고, 브루크너는 그 이듬해의 마지막 날인 1873년 12월 31일에 이 곡을 완성했다.

하지만 작품의 초연이 성사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우선 곡이 기술적으로 난해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달가워하지 않았다. 곡의 길이 또한 한 시간이 넘어가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장대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브루크너는 곡의 초연을 위해 여러 부분을 개정했고, 곡의 길이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1877년 12월 16일 마침내 ‘교향곡 제3번’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브루크너 자신의 지휘 아래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초연됐다. 완성된 지 4년 만에 어렵게 열린 초연 무대였으나 결과는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찬사 대신 곡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둘씩 자리를 박차고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한 시간가량의 교향곡이 끝날 무렵엔 공연장엔 고작 25명의 관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빈의 음악평론가 한슬리크는 이날 초연을 두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바그너의 ‘발퀴레’와 만났다. 그리고 그것은 두 작품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는 비난 섞인 혹평으로 작품 독창성의 결여를 신랄하게 비평했다.

당시 빈 음악계는 크게 두 부류로 양분돼 있었다. 하나는 브람스를 위시한 보수주의 음악파였고, 맞은편에는 바그너를 위시한 진보 음악파가 있었다. 이런 첨예한 대립 상황에서 ‘깊이 존경하는 거장 바그너 선생님께’라는 헌정사까지 넣어가며 바그너풍의 악상으로 가득한 교향곡을 발표했으니 반대편에 서 있던 보수파의 대표 평론가 한슬리크의 혹평이나 공연이 마치기도 전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나갔던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대재앙과도 같았던 초연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25명의 관객 중 한 명이 바로 17세의 말러였다. 작곡 초년병이었던 말러는 이 교향곡에 크게 감명을 받아 그 이듬해에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출판까지 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답례로 브루크너는 자신의 ‘교향곡 제3번’의 총보를 선물했다. 세월이 흘러 ‘교향곡 제3번’은 재평가를 받았고, 현재는 브루크너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우성‘남자의 클래식’저자

■ 오늘의 추천곡 - 브루크너, 교향곡 제3번 ‘바그너 교향곡’

1872년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1873년 12월 31일에 완성해 작곡가 자신의 지휘 아래 1877년 12월 16일 빈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됐다. 별칭인 ‘바그너’ 혹은 ‘바그너 교향곡’은 브루크너가 직접 붙인 것은 아니다. 연주 길이는 1시간가량으로 총 4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1악장 도입부의 트럼펫 솔로와 이어지는 금관의 향연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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