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소재 사립고 영어수업 녹음
학원 강사에 전달돼 교재로 제작
학습 자료·필기 내용까지 ‘복제’

학교 “학원의 비도덕적 상행위”
학원 “내신 대비해야 살아남아”


지난 4월 경기 소재 한 유명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서 ‘수업 내용 녹음 유출 사태’가 발생해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학교에서 배포한 가정통신문에 따르면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1학년 영어 수업 내용이 녹음·녹취돼 학원 강사에게 전달됐고, 강사가 이를 바탕으로 내신 대비 수업을 진행한 사실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해당 강사는 1학년 국어 수업 중 학습 자료와 필기 내용도 그대로 복제해 이를 ‘유료 강의 교재’로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했다.

학교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생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비도덕적 상행위”라고 경고했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자료 제공에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주의 차원에서 가정통신문을 배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 지역 한 특목고 교사는 “학원 교재를 보면 수업시간에 농담으로 한 말까지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며 “수업권이 침해되는 기분이 들지만, 교육열이 높은 학교 주변 학원에서는 당연한 듯 벌어지고 있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등 주요 학군지나 특목고·자사고 인근 학원가에는 특정 학교 학생들을 겨냥한 ‘○○고 내신준비반’이 성업을 이루는데, 이 같은 수업 녹취나 필기 노트·부교재·학습자료 수집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학원들은 중간·기말시험 기간마다 ‘학생 필기를 통한 교과서 분석’ ‘학교 시험 기출 분석을 통한 출제 유형 완벽 대비’ 등으로 마케팅해 특정 학교 재학생들을 모은다. 치열해지는 내신 경쟁에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에 수업 내용을 그대로 제공한다는 게 학교 교사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교육부에 따르면 교사의 동의 없이 수업을 녹음하고 청취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 교육부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해설서’에 따르면 학부모 등 제3자가 교사의 동의 없이 녹음기, 스마트폰 앱 등을 활용하여 수업 내용을 녹음 또는 실시간으로 청취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교육활동 침해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 따라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다.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보고받은 관할청은 ‘교원지위법’에 따라 고발도 가능하다.

학생들은 과열된 내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내신반 4개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대치동 학원 관계자는 “학교 수업 내용을 깊이 파악하지 못하면 ‘내신 대비’라는 부분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사교육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 과목당 교사가 여러 명이라면 아이들에게 부탁해 각 교사의 필기나 수업 내용을 모두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 해당 학원을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 최모(17) 군은 “내신 등급이 한 문제로 갈리는 상황에서 수시 비율이 커지면서 학생들이 내신 관리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더 나은 내신 기출 분석, 학교별 변형 문제를 받으려면 학원에 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조율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