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들, 의료 정책 추진 때마다
집단적 위력행사 통해 이익챙겨
내년 증원백지화 노림수 분석도
“강경행동 뿌리엔 계급의식
국민·정부 상대 공동대응”
정부가 불공정 논란을 감수하면서 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했지만 서울대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은 무기한 휴진을 결의하면서 의료 파행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전공의들은 의료 현장에 돌아오지도, 사직하지도 않은 채 요지부동이다. 정부의 잇단 양보에도 의사들이 더 강경해진 배경에는 수가(진료행위 대가) 인상 등 경제적 이유와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위한 협상력 확보, 선민의식 등 사회적 요인이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일 학계와 시민사회는 정부가 수십 년간 의료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의사들이 진료 거부 등 위력을 앞세워 수가 등 집단이익을 극대화했다고 보고 있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들이 격무에 시달린다면서도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도 경쟁자가 늘면 희소가치와 수익이 줄어드는 탓으로 분석된다. 2000년 총파업 당시 의사들은 의약분업을 수용하는 대신 ‘의대 정원 10% 감축’과 ‘수가 인상’을 관철시켰다. 2014년 원격진료 반대 총파업 등에서도 민심을 잃었지만 이익은 사수했다.
국민의료비는 의약분업 직후인 2001년 31조 원에서 2010년 80조 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23년 22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수가 인상에 실손보험 확대가 맞물린 결과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 어떤 분야에서도 국민 부담이 20여 년 만에 7배로 늘어난 곳은 없다”며 “국민의료비는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로 흘러간 돈”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료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한국 의사 연봉의 토대가 된 셈이다.
의대 증원을 되돌릴 수 없어도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총파업을 강행하는 것은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위한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의사단체 요구에 대한 사회 반발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동대응전선’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료개혁에 반발하는 의사들은 미용 의료 자격 개방 등 미래 이익에 불리한 내용이 확정되지 않도록 압박을 가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의사가 직업이 아닌 ‘계급’이 됐기에 국민 정서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의료계 내부 지적도 나왔다. 수도권 병원 전문의 A 씨는 “감히 의사들에게 시비를 거냐면서 의사집단이 똘똘 뭉쳐 국민과 정부를 상대로 공동대응에 나서는 양상”이라며 “의사는 털끝 하나도 건드려서는 안 되고 우리는 어떤 처벌도 당할 수 없다는 선민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경파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은 의대 교육 백년대계와도 무관하다”며 “다른 이들과 경제적 이익을 나눌 수 없고 의사들에 대한 공격도 묵과할 수 없다는 계급의식이 강경 행동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백기를 들면서 의료정책은 번번이 좌초했지만 집단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 의사들의 그릇된 인식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지역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사가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소명을 다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존중받는 권위를 얻는 데 실패한 탓도 크다”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