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타계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토종 벤처 산업의 선구자이자 대부였다. 그는 자서전 ‘아름다운 경영’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사장님, 30억만 주세요. 물건 하나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꼭 있어야 합니다.” “계좌번호 불러보게.” 이런 식의 과감한 도전과 믿음으로 반도체 장비인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와 전자제품 제조 기초장비인 SMD 마운터 등을 개발해냈다. 미래산업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는 등 절정의 시기에,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가족들은 회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했고, 취직·하청 부탁을 거절하느라 동창회는 물론 고향에도 발걸음을 끊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정 회장은 퇴임 후 ‘기술이 한국을 먹여 살릴 것’이란 신념으로 515억 원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 기부했다. 국내 최초의 개인 고액 기부였다. “이 돈으로 모방하지 말라. 비범한 인재를 모아 달라. 미래에 국민을 먹여 살릴 기술을 개발해 달라”는 딱 3가지 당부만 하고 모든 운영을 카이스트에 맡겼다. 그는 ‘정문술 빌딩’ 준공식에도 “마땅히 돌려줄 것을 돌려주었다”며 나타나지 않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신기술이 나오기 전에는 찾지 않겠다”는 다짐에 따라 8년 뒤에야 첫걸음을 했을 정도다.

2남 3녀가 있음에도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와의 싸움이 가장 어려웠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기쁘다”고 했다. 벤처 정신과 이런 기부 철학을 남기고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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