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창가에 오니 알겠습니다. 밤과 수풀은 구분되지 않습니다. 당신과 새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창 하나를 열고 다시 창 하나를 열며 문장의 끝까지 걸어가도// 내가 본 것이 새였다고 생각해요? 창 하나를 닫고 다시 창 하나를 닫는 당신이 있어서 다시 백 년이 흐릅니다.’

- 안희연 ‘하나의 새를 공유하는 사람들’(시집 ‘당근밭 걷기’)


서점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창밖 보기다. 결코 한가하기 때문이 아니다. 서점 일은 시간이 넉넉한 편일 거라는 오해가 적잖다. 전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운영해 보니 손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서점은 바쁘다. 그런 중에도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창밖을 본다.

가판대가 하나. 그 곁에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둥치가 둘 보이는 평범한 거리 풍경이다. 그저 멍하니 시선을 두면 바쁘게 걷는 직장인, 춤을 추며 걷는 아이, 느릿느릿 걷는 노인, 휙- 자전거가 지나가고 비둘기가 내려앉는다. 화창하고 비가 오고 가끔 눈이 온다. 창밖의 존재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는 손님이 된다. 너무 손님이 없을 때 나는 들어와라, 들어와라 주문을 외기도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들이 창밖이 되면 재미가 있다. 이상토록 마음이 놓인다. 매일매일의 팍팍함, 크고 작은 근심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아마 나도 모르게 사는 모양이란 다 고만고만하다 싶어 안심하는 모양이다.

물론 하염없이 볼 것이 아니다. 현실은 나의 책상 앞에 있다. 눈을 돌려 보면 해야 할 일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창밖을 보기 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달리 보이기도 하는 건, 마음의 템포가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창밖 보기는 서점의 주된 업무. 어쩌면 나는 창밖이 아니라 먼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서점지기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