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구자의 서재

식민지 시기 도입된 ‘간통죄’와 ‘정조’ 개념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가족’을 만들고 보호하는 도구였고, 여기서 통제되지 않는 여성은 ‘음란’하고 ‘선량한 풍속’을 해칠 수 있는 위험요소였다. 남성은 국가를 지킬 수 있는 존재로 징집되었고, 국가는 입대를 피하려는 남성들을 색출하고 처벌했다. 바로 이 통제가 남성을 국민의 얼굴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국민으로서의 ‘권리’로 만들었고, 이는 목숨을 담보로 남성을 국민으로 인정해주는 동시에 여성을 2등 시민으로 만들어 왔다.
이 결과는 병역법과 경범죄처벌법을 통한 퀴어 존재의 통제로 가능했다. 남성의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만들고, 여성의 동성애는 ‘사춘기의 일탈’로 만들어서 국민을 재생산할 수 있는 이성애자로서의 남성과 여성만을 국민으로 인정했다.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규범을 교란하는 퀴어들은 ‘국민’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성’스러운 국민’은 국민 국가가 만들어지기 위해 퀴어가 삭제되어야 했음을, 나아가 그 안에서도 퀴어들이 틈을 비집고 살아냈음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논의는 대한민국이 ‘하나의 공동체’인 동시에 ‘구멍난 공동체’(90쪽)라는 사실을, 그 구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질문들을 붙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질문에는 언제나 구멍이 빨아들인 삶들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안희제 작가·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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