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유죄 평결에 “부패 판사 조작”
트럼프 檢 비난 이 대표와 유사
두 사람 모두 형사 재판 4개씩

입법부 통한 사법 리스크 방탄
트럼프는 꿈도 꾸기 힘든 일
667억 원 법률 비용도 비교돼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출이 확실시되고 올 11월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뉴욕 시민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verdict)을 받았다. 미 역사상 전직 대통령이 형사사건에서 유죄 평결받은 첫 사례인데, 성인물 여배우에게 옛 관계 입막음용으로 준 13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고 장부를 조작한 게 발목을 잡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배심원의 유죄 결정을 법원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해 판사의 형량 선고만 남았다. 사건이 지저분하고도 부도덕해 정상적인 국가나 상식적인 정치인이면 정계 은퇴하고도 남을 일인데, 트럼프는 당당했다. 유죄 평결 후 “부패한 판사가 조작한 재판이었다. 국민에 의한 진짜 판결은 11월 대선에서 나올 것이다”고 그답게 반응했다.

적반하장·내로남불 행태,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불퇴전 정신 상태 등을 들어 트럼프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유사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공교롭게 두 사람 모두 4건의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성인물 배우 사건 외에 2020년 대선 패배 결과 번복 시도와 관련된 의회 난입 사태 선동,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조지아주 대선 결과 번복 시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 대표도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성남FC, 위증교사, 허위사실 공표 등 기존 3개 재판에 이어 대북송금 사건으로 지난 12일 추가 기소됐다. 재판받는 건수는 같지만, 이 대표는 서로 다른 4개 사건이 한 개 재판부에 병합된 게 있어 사건 수로 치면 트럼프보다 3개 더 많다.

사건 수에서도 밀리지만, 트럼프가 절대 이 대표를 따라갈 수 없는 게 입법을 통한 사법 리스크 방탄이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171명을 보유한 압도적 다수결의 힘으로 대북송금 사건 수사에 대한 특검법을 발의한 데 이어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판사·검사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왜곡죄, 수사기관 무고죄, 검사 기피제 등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입법을 들먹인다. 이 대표의 수사·기소와 유죄 판결을 막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법을 경쟁하듯이 들이대는 의원들이 부끄럼 없이 줄 서 있다. 특정인에 대한 표적 수사를 금지하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발의됐는데, 그러지 말고 아예 ‘이재명 수사 금지법’을 만드는 게 어떨까.

트럼프가 족탈불급인 분야는 또 있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이재명 대표 연임에 대비한 맞춤형 당헌 개정을 완료했다. 당 대표의 대선 1년 전 사퇴 규정에 ‘특별하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당무위 의결로 사퇴 시한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붙여 예외를 둘 수 있게 했다. 김대중 이래 당의 유산으로 내려온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사실상 폐기한 것으로, 이재명당화의 완성이다. 8월 전당대회에서 재선하면 2026년 6월 지방선거 3개월 전에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아도 돼 대선 막판까지 최대한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사법 리스크에 저항할 수 있다. “위인설관을 넘어 1인 지배 정당화를 노골화하는 것으로, 중도층 이탈을 부추겨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의원들도 있지만, 이 대표의 애타는 속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대선 승리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아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기소 당직자의 직무 정지 조항을 삭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가 가장 부러워할 건 돈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난해 5000만 달러(약 667억 원) 정도를 법률비용으로 지출했지만, 이 대표는 재산상 손실 낌새가 없다. 최근 대북송금 사건 기소 전까지 3개 재판부에서 6개 사건으로 재판받고, 대북송금과 법인카드 유용 사건 수사를 받아온 이 대표의 재산은 거의 변동이 없다. 내용이 복잡하고 사건 수도 많아 고용 변호사가 2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대표의 지난해 말 기준 신고 재산은 31억여 원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3억3257만 원 줄었을 뿐이다. 감소 이유도 성남 아파트 가격 하락에 따른 것이라 불가사의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장동 변호인’이 대거 공천받은 것을 지적해 ‘대납’ ‘물납’ 의혹을 제기했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트럼프가 감히 명함을 들이밀 상대가 아니다.

김세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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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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