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리고 떠난 사람들 - 장기기증 고 박진성의 어머니
“대학원 총학생회장 뽑힌 모범생
평소 헌혈로 사랑나눈 것 보며
아들도 분명 기뻐하리라 여겨”
“세상에 내 아들이 7명 있다고 생각해요. 아들의 장기를 나눠 가진 7명의 아이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같이 살고 있다고… 아들이 못다 한 꿈을 이들이 다 이뤄줄 것이라고….”
28일 문화일보와 인터뷰한 김매순(70) 씨는 아들 고 박진성(사망 당시 26세) 씨를 ‘딸 같은 아들’로 기억했다. 삼형제 중 막내였던 박 씨는 보통 남자아이들과 달랐다고 했다. 단 한 번도 부모님의 속을 썩인 적 없다는 박 씨는 중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모범생이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해 그의 꿈인 교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박 씨에겐 교단에 서서 훌륭한 후배를 양성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친구들로부터도 신망이 두터웠던 그는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기까지 했다. 김 씨는 “모범적이고 성실했던 아들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아이였다”면서 “부모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씨는 총학생회장 자리에 서보지 못했다. 대학원의 새 학기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편두통 증상이 나타난 박 씨는 대형 병원의 정밀 검사 끝에 뇌혈관 질환이라는 진단명을 받아들었다. 머릿속에 뇌동맥이 꽈리처럼 꼬여 부풀어 올라있었다. 급하게 수술을 마쳤지만, 뇌압이 상승하면서 급기야는 뇌출혈로 악화했다. 병원에선 가망이 없다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 가슴을 들고 김 씨는 매일같이 교회에 나가 기도했다. ‘아들을 살려달라’는 기도에 ‘사랑을 베풀어라’라는 응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다던 김 씨. 남편이 조심스레 장기 기증 이야기를 꺼내자 하나님의 뜻이란 걸 깨달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통해 사랑을 나누던 아들도 그에 동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2007년 1월 3일, 아들은 심장 등 장기를 7명에게 나눠주고 세상을 떠났다.
억센 비가 오던 어느 날, 김 씨는 유가족들을 위해 마련된 사이버 추모관을 찾아 박 씨에게 편지를 남겼다.
“자랑스러운 아들 진성아! 많은 사람에게 새 삶을 주고 간 너를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고 있단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서 많은 열매를 맺듯이 너는 많은 열매를 남기고 떠났구나. 아들아! 엄마가 힘들 때마다 밝은 미소로 힘을 주던 사랑하는 막내야. 엄마에게 더 큰 용기와 힘을 주렴.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전수한 기자 hanih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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