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주먹을 불끈 쥐고 팔뚝의 힘을 과시하는 여성 근로자 포스터는 미국 여성 파워를 상징하는 이미지다. ‘우리는 할 수 있다(We can do it)’는 포스터의 글귀에선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남성의 일터였던 폭격기, 수송기 제조 군수 공장이 여성에게 개방되는데 이 시기에 그려진 포스터가 바로 팔뚝의 근육을 과시하는 ‘리벳공 로지’다.

이 포스터는 1960년대를 휩쓴 여권신장 운동의 심벌로 여겨지며 다양하게 재생산됐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원이 여성 최초로 미 하원의장이 됐을 때엔 여성파워를 과시하는 펠로시 이미지로 잡지 표지에 등장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다시 이 포스터가 영국 이코노미스트 표지를 장식했다. 헤어밴드를 하고 손엔 ‘X’ 표시 투표지를 쥔 작업복 차림의 여성이다. 과거와 다른 것은 팔뚝에 ‘나의 몸 나의 선택(My body My choice)’이란 글귀가 쓰여진 점이다.

낙태가 미 대선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민주당은 여성 선택권을 지지하는 ‘프로 초이스(Pro-choice)’, 공화당은 생명권을 앞세워 반대하는 ‘프로 라이프(Pro-life)’ 입장이다. 그런데 낙태를 여성의 헌법상 권리로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대법원이 2022년 뒤집으면서 낙태 전쟁 무대는 전국 규모에서 각 주로 바뀌었다. 낙태 허용 권한이 주로 넘겨졌기 때문이다. 대선 때 16개 주는 낙태 관련 주민투표를 하는데 여기엔 경합주(swing state)인 네바다, 애리조나,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가 포함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TV토론에서 선전한 데 이어 대법원이 대선 불복 면책특권 일부를 인정하면서 재선에 유리한 상황을 맞게 됐지만, 낙태 문제가 복병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화당 지지자 중 대졸자들이나 대도시 교외 거주 중산층은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해 낙태 문제가 대선 투표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루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얼마 전 ‘낙태는 트럼프의 워털루가 될 수 있다’는 칼럼을 쓴 바 있다. 1815년 워털루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처럼 낙태가 트럼프 당락의 최후 변수라는 지적이다.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한다’는 여성들이 11월 대선에서 어느 쪽에 표를 던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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