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년 지긋지긋하게 괴롭혀온 비염을 언제부터인가 남 일처럼 잊고 살아온 것이다. 안 써본 약이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짬이 날 때마다 숲에 들러 나무처럼 맨발로 땅을 밟고 있었던 습관 덕이 아닌가 싶다. 숙면도 취할 수 있었고, 숲의 아로마까지 덤으로 받았던 것이다.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장마 무더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라보체에서 만난 차윤아 그림에서 청량한 바람이 숲의 향기를 몰고 부는 것이었다. 무엇을 연상하거나 의미를 곱씹어서가 아니라 그냥 감각이나 정서적으로 반응한다. 담론이나 서사의 틀 안에서만 독해를 거듭해 온 관행에서 벗어난 반응이다.
영롱하고 싱그러운 색조로 표출된 이미지가 어떤 찰나의 환상이나 심상을 포착한 듯하다. 순간의 번득이는 감각과 안료의 물성이 절묘하게 상호작용을 했던 것. 우연의 바다를 누비고 있는 것 같지만, 작가만의 심미안과 민첩한 손놀림으로 제어된 결과다. 분비되는 도파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저렇지 않을까.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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