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몸에 관한 책을 읽는다// 뇌와 소화기관처럼 중요한 것들은 다 주름 잡혀 있다고 주름잡는다// 그럼 내 얼굴에 있는 주름은/ 내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 그건 웃을 때 생긴 주름이 아직도 얼굴에 남아 웃고 있는 거라고 한다.’

- 임지은 ‘팔자주름’(시집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무릎이 아파 왔다. 병에는 원인이 있을 터, 아무리 생각해봐도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며칠 지나면 낫겠지. 시간도 약이 되질 못해 파스를 사러 갔다. 약사는, 파스야 일시적인 효과만 줄 뿐이라고, 무릎에 좋은 약을 챙겨 먹을 ‘나이’가 됐다고 했다.

친구는 운동을 권했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야. 살기 위해 하는 거야. 너도 그럴 ‘나이’가 됐어. 믿을 수 없다. 아직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오가는 길에 노인들의 걸음을 유심히 보게 된다.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거나 냉큼 부축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이유 모두 이제 더는 남 일일 수 없다는 자각 탓일 것이다. 거울을 보았다. 흰머리만 좀 늘어났을 뿐, 예전 그대로인 것 같다. 몇 해 전 내 사진을 찾아본다. 젊었네 젊었어.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다르구나. 달라졌구나. 세월이란 어김없이 적중하는구나. 비껴가는 법이 없구나. 침울해져서 무릎에 좋다는 약도 찾아보고 피트니스 클럽의 레슨비도 확인해본다. 미루던 염색도 더는 피할 수 없을 것 같고. 그간 너무 무심했다. 무책임했다. 나이가 든 덕분에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거지.

정형외과에 갔다. 무릎이 아파서 왔노라, 접수하는데, 어째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의사는 무릎 사진을 보더니, 쌩쌩하니 걱정 말라고 한다. 피로가 누적돼 그런 거라고 한다. 병원을 나서는데, 무릎이 아프지 않다. 몹시 씩씩하게 걸어서 서점으로 돌아왔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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