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인공지능(AI) 영화가 공식 경쟁부문이 되면서 AI 예술이 현실에 바싹 더 다가왔다. 배우와 카메라 없이 이미지 생성 AI로 만든 본선 진출작 15편은 서사·기술·효과 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영화의 아버지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기차의 도착’을 상영한 후 100여 년간 이어져 온 ‘대상을 촬영해 재현하는 종합예술’이라는 영화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작품상을 받은 레오 캐논 감독의 2분짜리 ‘할머니들은 어디로 떠난 걸까(Where Do Grandmas Go When They Get Lost)’는 우리 곁을 떠난 할머니를 상상한 은유적 내용으로 실사와 일러스트를 섞은 듯한 화면이 꽤 고급스럽다. 지난 2월 두바이 AI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고 이번엔 특별 언급상을 수상한 권한슬 감독의 3분짜리 ‘원 모어 펌킨(One More Pumpkin)’도 인상적이다. 노부부의 비밀을 담은 호러물로 역시 배우와 카메라 없이 AI로만 만들었다. 제작 기간 5일, 제작비는 전기요금 정도였다니 놀랍다.
모션캡처, 디 에이징 등 AI 기술은 이미 영화 제작에 널리 쓰이고 있다. 기술 발달 속도가 가파른 만큼 관련 쟁점도 많다. 저작권, 초상권 등에 대한 요구와 함께 AI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예술 논의도 뜨겁다. AI 영화계 대표선수로 이번에 부천영화제를 찾은 데이브 클라크 감독은 “AI 덕분에 누구나 ‘인사이드 아웃’을 만든 픽사가 될 수 있다”며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AI 기술로 영화 제작의 민주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미래를 낙관했다.
반면, AI 담론에 적극적인 과학소설가 테드 창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좋은 영화란 작가, 감독부터 카메라맨, 의상 디자이너, 편집작가, 음악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모두 숱한 순간순간에 선택한 결과의 총합인데 기존 데이터로 이뤄진 AI는 이에 필적할 감동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AI는 의도도 욕망도 없기에 결코 예술이 될 수 없고, 숱한 범작을 양산해 예술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그렇다면 AI 영화는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하향 평준화에 이를 것인가. AI는 그 어떤 욕망도 의도도 없으니, 결국 그 방향은 욕망하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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