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속의 This week
1976년 7월 18일 몬트리올올림픽 체조경기장. 153㎝, 39㎏의 가녀린 체구에 열네 살 소녀가 나비처럼 날아 이단평행봉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고난도 기술을 부드럽게 연결하며 현란한 연기를 펼치더니 흔들림 없이 사뿐히 착지했다. 한 치의 실수도 없는 아름답고 완벽한 경기에 관중들이 넋을 잃고 바라봤다. 곧이어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10점 만점에 1점. 모두가 당황한 이때, 10점이라는 심판진의 발표에 관중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체조에서 만점은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 당시 점수판이 9.99점까지밖에 표시할 수 없어 1.00으로 찍힌 것이다. 불가능을 뛰어넘어 올림픽 체조 사상 처음 10점 만점을 받은 주인공은 루마니아의 나디아 코마네치였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그의 만점 행진은 계속됐다. 총 7번의 10점을 받으며 개인종합, 평균대, 이단평행봉에서 3관왕에 올랐다. 미국의 타임지는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고 극찬했고, 전 세계는 이 체조 요정에게 매료됐다. 역사적인 기록이었지만, 비판도 있었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루마니아에서 체조 훈련은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었다. 코마네치는 여섯 살 때부터 하루에 수 시간씩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엄격한 식단 관리를 계속해야 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경기장에서 잘 웃지 않아 ‘작은 바위 덩어리’로 불렸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후 코마네치의 생은 파란만장했다.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은 그를 국민 영웅으로 내세워 선전 도구로 이용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슬럼프를 겪으며 체중이 10㎏이나 불었고, 그 와중에 부모는 이혼하게 됐다. 벨라 카롤리 코치와 결별했다가 재결합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2개를 획득하면서 재기에 성공했고, 1984년 은퇴했다.
카롤리 코치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 정부의 핍박과 감시가 심해지자 코마네치는 28세인 1989년 미국 망명을 감행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망명을 도와준 사람이 그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싸구려 공연으로 내몰았다. 미국 체조 선수 출신 버트 코너를 만나면서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게 됐다. 1996년에 코너와 결혼해 함께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48년 전 체조 역사를 다시 쓰고 체조의 전설로 불리는 코마네치. 그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거의 반세기마다 누군가가 나와서 스포츠를 바꾼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체조 스타 시몬 바일스에 대해 “지금 이 세대의 우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4관왕을 차지한 바일스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유력한 다관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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