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민의 정치카페 - 한동훈의 “국정농단” 파장
韓, 김건희 문자에 “당무개입” 비판… ‘최순실 국정농단’ 프레임 씌우며 ‘진내 사격’ 양상
羅·元 등 “대통령 탄핵 밑밥 깔기냐”… 민주는 ‘영부인 국정개입 게이트’로 공세 본격화 태세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후보가 쏘아 올린 이 발언이 전대 이후 정치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인다. 한 후보가 할 말을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야권에 탄핵 추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경원·원희룡 후보 측은 한 후보가 전대 승리를 위해 여권에 막심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진내 사격’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치명적 경쟁
당내 경선에서는 경쟁 상대를 향한 폭로 경쟁이 발생하기 일쑤다. 문제는 이런 폭로가 이내 소속 정당의 담장을 넘어 라이벌 정파와 정적들에 의한 치명적 공격 소재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2007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사이에서 벌어졌던 폭로전은 이후 이명박 정권(2008∼2013년)-박근혜 정권(2013∼2017년)을 관통하는 ‘10년의 저주’로 이어졌다. 박 후보가 이 후보를 겨냥해 제기한 ‘다스’ 차명 소유 의혹은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의 대상이 됐고, 이 대통령은 퇴임 후 징역 17년 형을 받았다. 이 후보가 박 후보를 향해 제기했던 최태민 목사와의 친분 의혹은 박 대통령 재임 중 최 목사의 딸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건으로 현실화했고, 이윽고 탄핵 사태를 만들어냈다.
민주당 대표에 두 번째 도전하는 이재명 전 대표에게 천형처럼 씌워진 대장동 개발 의혹 역시 2021년 대선후보 당내 경선 때 상대 이낙연 후보 측 폭로로 시작됐다. 이 후보의 측근 남평오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은 경선 이후 “내가 대장동 의혹을 최초로 언론에 제보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금 대장동 사건은 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의혹 등과 연결돼 이 전 대표의 정치생명을 좌우할 최대 사법 리스크가 됐다.
이번 여당 전대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의 폭발력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원 후보의 한 후보 댓글팀 운영 의혹은 향후 야권의 정치 공세 소재로 활용될 게 분명해 보인다. 한 후보 측이 원 후보의 폭로 배후에 김 여사와 대통령실이 있다고 의심하며 제기한 당무개입·국정농단 의혹 역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빌드 업 중인 민주당에 호재를 제공하고 있다. ‘문자 읽씹’ 사건(1월 15∼25일)이 일어나던 와중인 1월 21일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지지 철회’ 의사를 전하러 온 이관섭 비서실장에게 “당무개입 아니냐”고 반발했던 것까지 문제가 되는 형국이다.

◇당무개입과 국정농단
한동훈 후보는 지난 1월 다섯 차례에 걸친 김건희 여사의 문자 발송의 성격을 사실상 당무개입·국정농단으로 봤다. 자신의 ‘문자 읽씹’ 논란에는 “사적인 경로를 통해 (김 여사와) 대화를 주고받았다면 민주당에서 ‘국정농단’이라 할 것”이라고 말했고(8일),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비정상적인 전대 ‘당무개입’이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6일).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겨냥한 발언들이다.
나·원 후보는 한 후보의 이 발언에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나 후보는 “당무개입·국정농단 등은 여당 내 금기어”라면서 한 후보의 이런 발언들이 “대통령을 향한 협박”이라고 공격했다. 나 후보는 “박근혜 정부가 당무개입·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당하지 않았느냐”며 한 후보의 이런 발언들이 “윤 대통령 탄핵에 밑밥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경북(TK) 출신의 여당 다선 A 의원은 “한 후보가 쏘아 올린 당무개입·국정농단 발언의 파장이 간단치 않을 것 같다”고 관측했다. A 의원에 따르면 한 후보의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①공무원 신분인 대통령의 당무개입과 민간인 신분인 김 여사의 국정농단은 그 자체로 탄핵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 그리고 ②과거 한동훈 검사 자신이 당무개입·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것.
나 후보는 지난 11일 MBN 방송토론과 12일 TK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한 후보가 자기만 살자고 당무개입·국정농단 같은 금기어를 함부로 쓴다”고 공격했다. 다른 후보들 역시 16일 채널A 방송토론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방침이다.
◇‘진내 사격’ 리스크
한동훈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이런 비판을 ‘공포 마케팅’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에게 공무원으로서의 중립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헌법 제7조, 공직선거법 제9조). 또한 ‘박근혜 탄핵’ 사례에서 보듯 민간인의 국정개입은 국정농단이 될 수 있다. 베테랑 검사에 법무부 장관까지 거친 한 후보는 이런 사례와 그 후과(後果)를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1. 노무현 대통령은 17대 총선(2004년)을 앞두고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가 중립 의무 위반으로 국회로부터 탄핵소추 됐다. 헌법재판소는 ‘중립 의무를 어겼지만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할 정도로 중한 사정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이를 기각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20대 총선(2016년)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형사 법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윤 대통령의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 철회’ 입장 전달 등이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할 정도의 당무개입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2.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제 탄핵까지 당한 경우다. 한 후보의 ‘김건희 국정농단’ 운운은 민간인 신분인 김 여사의 문자 발송 행위가 민간인 최순실의 박근혜 정부 국정개입 사건과 유비(類比)를 이룬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수도권 출신의 여당 B 의원은 “한 후보의 발언은 의도했든 아니든 ‘김건희 행위’와 ‘최순실 행위’가 국정농단이라는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향후 야권의 대통령 탄핵 추진 논리를 제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후보의 일련의 발언은 금세 야권으로 전파됐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10일 “김 여사의 광범위한 국정개입이 사실이라면 정권이 문을 닫아 마땅한 최악의 국정농단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쏘공’의 향배
나경원 후보는 통화에서 “한 후보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대세론에 취해 ‘YS 화형식’까지 하면서 김영삼 대통령과 대립했던 이회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평했다. 한동훈 후보가 쏘아 올린 공은 앞으로 윤석열 정권은 물론 본인의 정치 행보에도 부담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진내 사격’은 아군 진지에 진입한 적군의 공세를 저지하거나 아군의 역습을 지원하기 위해 아군 진지를 향해 실시하는 사격. 방어 작전의 한 형태로 취급되지만 아군의 희생을 각오해야 함.
대통령의 ‘중립 의무’와 관련, 헌법 제7조 ②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함. 또 공직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상세히 규정.
■ 세줄 요약
치명적 경쟁 : 당내 경선 와중에 벌어지는 폭로전은 때로 라이벌 정당에 의해 치명적 공격 소재로 이용됨. 한동훈 후보가 제기한 김건희 여사 국정농단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빌드 업 하는 민주당에 호재를 제공.
당무개입과 국정농단 : 한 후보의 발언은 특히 대통령의 당무개입이나 민간인인 김 여사의 국정농단은 그 자체로 탄핵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에게 공무원으로서의 중립 의무를 부과함.
‘진내 사격’ 리스크 : 김 여사 문자 논란에 국정농단 프레임을 씌우는 건 일종의 ‘진내 사격’임. 민주당은 벌써 ‘국정개입 게이트’로 공세 시작. 한쏘공이 향후 여권엔 물론 본인의 정치 행보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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