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헌법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지닌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조항이 있다. 대통령이 스스로 판단해 결정할 수도 있고, 부통령을 포함한 절반 이상의 각료가 그렇게 판단해 의회에 서신으로 통보하면 대통령직이 정지된다. 대통령이 거부해도 상하원 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하야(下野)가 결정된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후 벌어진 국가혼란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1967년 의회를 통과한 수정헌법 제25조엔 대통령 직무 정지 및 부통령 승계 등이 세세히 규정되어 있다. 이후 25조에 따라 역대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적은 없다.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가 수술 등 건강상의 이유로 부통령에게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한 뒤 회복한 경우가 있을 뿐이다.
최근 들어 워싱턴에서 미 수정헌법 25조 발동론이 나온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은 4년 더 대통령을 하기에 너무 늙은 것뿐만 아니라, 남은 6개월 임기를 버티기도 힘들기 때문에 수정헌법 25조에 따라 대통령직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말 TV토론 후 민주당 진영에서 확산되는 바이든의 대선 후보 사퇴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대통령직을 정지시키자는 극단적 주장이다. 인지 능력이 떨어진 바이든 대통령을 헌법 25조를 원용해 쉬게 해주자는 것인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동의하지 않는 한 현실화 가능성은 없다. 고령 후보를 둘러싼 민주당의 혼란을 부채질하기 위한 공화당 측의 흑색선전일 수도 있다.
정작 수정헌법 25조 발동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여러 차례 거론됐다. 마이클 울프는 저서 ‘화염과 분노:트럼프 백악관의 내부(2018)’에서 참모들이 헌법 25조에 따라 트럼프를 면직시키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다고 폭로해 파장이 일었다. 실제 2021년 1월 의사당 폭력 사태 후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반란을 조장하는 대통령을 해임해야 한다”며 헌법 25조 발동 촉구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이 거부해 불발됐지만, 트럼프에겐 큰 타격이었다. 3년여 전에 이어 또다시 헌법 25조 발동론이 나오는 것은 쇠락 징후가 뚜렷한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전주곡인 것 같아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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