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구자의 서재

반응은 크게 맹렬한 지지와 완전한 멸시로 나뉜다. 그리고 음모론이라는 단어는 후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음모론은 낙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다. 사회학자 전상진의 ‘음모론의 시대’(문학과지성사)는 음모론이 오래된 현상이며 통치와 저항 모두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음모론이 제기하는 문제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모론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구조의 영향이나 문제 제기 자체가 틀릴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올바른 질문에 대한 잘못된 답변”(217쪽)이기 때문이다.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에서 음모론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군대를 만들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에도, 참사의 원인을 밝히라는 유가족들의 절규에도 음모론이라는 이름이 붙는 시대다. 음모론은 통치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전략인 동시에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이해하려는 절박한 시도이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관철시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음모론들의 방향성이나 그것을 주장하는 이들의 위치 등을 차근차근 분석하고 분별하는 일이다.
‘음모론의 시대’는 책임윤리를 강조한다. 누구의 책임인지, 나는 어디까지 연루되어 있는지 분별해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226∼227쪽). 이것은 정확한 비판과 변화를 위한 성찰 능력이다. 책을 읽은 뒤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포함하는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대상들에 대한 치밀한 추적과 분석을 통해 책임윤리를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밝혀내고, 그것을 곳곳에서 공략하는 실천이다. 지금의 음모론은 시청각 자료를 다루는 기술과 그러한 자료들을 삽시간에 온 사방으로 유통시키는 인터넷 네트워크와 소셜미디어 안에서 집단적으로 구성된다. 태도와 윤리까지도 제조해내는 기술적 연결망 안에서 관찰하고 개입하며 확신에 찬 단순한 대답에 맞서야 한다.
이것이 음모론이 가진 질문의 힘을 포기하지 않고, 좀 더 나은 대답을 찾아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안희제 작가·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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