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 배우 이선균이 주연한 영화 두 편이 개봉한다. 12일 개봉한 영화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영화는 2021년 촬영돼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지만, 그해 개봉조차 못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이선균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탓이 컸다. 그러다 이번에 뒤늦게 개봉했다. 여론이 호전된 덕분이다.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에 연루돼 재판을 받는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 역을 맡은 영화 ‘행복의 나라’도 다음달 14일 개봉한다. 2022년 1월 촬영을 마친 ‘행복의 나라’ 역시 이선균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한 때 개봉 여부가 불투명했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약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에 의존해 그를 몰아붙였던 경찰, 혐의와 상관없는 사생활까지 끄집어내 난도질했던 언론, 정보가 아닌 자극을 쫓으며 조롱과 비난의 말을 내뱉던 대중까지. 가십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이선균은 생을 마감했다. 놀랍게도 죽음으로써 이선균은 배우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한 인간에 대한 조롱과 비난으로 파인 구렁텅이는 좋은 배우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그가 살아 있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로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젊을 적 감옥까지 다녀온 재기 불능 마약 중독자였다. 그가 영화판에 돌아오지 못했다면, 지금의 ‘아이언맨’도, 인간 승리 드라마도 없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상식에서 이선균은 추모의 대상이 됐다.
예술을 위해 범죄를 눈감아주자거나 재능이 아까우니 잘못은 넘어가자는 특정 팬덤의 논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을, 더구나 죄를 저질렀는지 확실치도 않은 상태에서 낙인 찍을 권한은 우리 사회 누구에게도 없다. 애초에 죽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고, 죽지 않았다면 이토록 그리워할 일도 아니다. 대중은 누굴 좋아할지 선택할 특권이 있지만, 심판자는 아니다.
매 작품 이선균은 어떤 역할이든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인간 이선균은 완전무결한 선인도, 천하에 몹쓸 악한도 아니었지만, 배우 이선균은 모든 게 가능하다. 올 여름은 이선균을 배우로 기억하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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