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경제부 차장

A 기관은 기관장 공석 상태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CEO 대행 체제가 장기화하며 신사업 추진도 ‘올스톱’ 상태다. A 기관 관계자는 “대행이 중요 의사 결정을 부담스러워하다 보니 업무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영 공백은 인사 지연으로 이어지며 직원들 불만도 커지고 있다. A 기관처럼 기관장 임기가 만료됐거나 비어 있는 공공기관은 60∼70곳에 이른다. 전체 공공기관이 327곳임을 고려하면 5분의 1가량의 공공기관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공공기관 경영평가까지 마무리되며 기관장 물갈이가 개시되긴 했다. 한국전력공사 산하 발전사를 비롯해 한국공항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부동산원 등 굵직한 알짜 공기업 30∼40곳이 일제히 기관장 선임 공고를 냈다.

교체 작업에 시동을 걸었지만, 문제는 접수-검증-주주총회 등 통상 3∼4개월의 절차를 고려할 때 연말이나 돼야 후임 CEO가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10월 국정감사마저 수장 공백 상태에서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나마 강원랜드, 코트라 등은 ‘정치권이 온다’ ‘공무원이 온다’ 소문만 무성한 채 아예 공모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한국석유공사도 사장 임기가 종료됐지만, 현 사장이 연임할지 후임 인선이 이뤄질지 오리무중이다.

이 같은 기관장 장기 공백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 무더기로 임명돼 ‘알박기’ 논란이 일었던 기관장들이 올해 대거 임기가 끝나는 데다, 4·10 국회의원선거 낙선·낙천자들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총선이 마무리된 후 공공기관장 인사 큰 장이 설 것이란 예상이 일찌감치 나왔다. 여기에 총선 이후에도 선임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부처 개각이 지연되고 있고, 여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까지 염두에 둔 계산 때문이란 얘기마저 나온다. 실제로 지난 정부의 ‘캠코더’(문재인 대선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선거에서 떨어진 여당 인사들이 줄줄이 기관장 후보 물망에 올라 있다.

특히, 올해 임명되면 이번 정부에서 3년의 임기를 넉넉히 보장받을 수 있어 ‘눈치싸움’이 치열하다는 전언이다. 한 기업분석연구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관료 출신 공공기관장이나 상임감사 4명 중 1명은 이미 대통령실이나 검찰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과 관계없이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고질병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기관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권에 연이 닿아 있는 인사가 CEO로 임명되면 장점도 물론 있다. 하지만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 임명은 조직과 나아가 정부 정책 추진에 결국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책 집행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공공기관의 CEO 공백이 길어질수록 우리 경제에는 마이너스가 된다. 무분별한 낙하산 인선을 지양하면서 기관장 선임에 이제 속도를 내야 한다.

박수진 경제부 차장
박수진 경제부 차장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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