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사건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세론을 탄 기류다. 물론 선거일까지 100일 이상 남아 있어 또 어떤 변화가 발생할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축제의 장이 됐다. 반면, 세계 각국은 불안감에 빠져든다. 유럽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쓸모없다(obsolete)”고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강경한 일방주의자 J D 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자 패닉 상태다. 이들이 승리하면 미국-나토 연대는 더 느슨해지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기약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024년은 해리포터의 잔혹한 마법사 볼드모트 같은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연초 나온 적이 있는데 그 예측대로 주요국에선 정치적 격변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노동당에 완패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조기 총선 도박에 실패해 남은 임기가 가시밭길이 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 약진하면서 힘을 잃었다. 7·13 트럼프 피격은 암울한 하반기를 예고하는 신호탄인 셈인데, 미국 대통령까지 교체될 경우 주요 7개국(G7) 위상도 크게 흔들릴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도 큰 도전이 될 게 분명하다. 인플레감축법(IRA)·칩스법 등으로 대표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산업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해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동맹 중시 외교 안보 정책 기조도 동맹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선회할 것이란 예고도 잇달아 방위비 분담을 놓고 동맹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자 나라를 우리가 왜 지켜주느냐”며 불만을 표하면서도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선 “사랑에 빠졌다”며 호감을 표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시즌2가 곧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맞아 혼란이 컸던 8년 전과 달리, 충분히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실제 힘을 쓸 수 있는 시한은 2026년 중간선거 때까지 2년 남짓이다. 동맹체제 전반을 흔들며 재조정할 여유가 없다. 11월에 임기 반환점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비슷하다. 한미 정상이 의기투합할 동맹 이슈를 선택해 집중한다면 의외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핵 능력 확보 문제다. 원전 연료 30% 러시아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화급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신봉하며, 한국의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한사코 반대하지만, 트럼프 측은 유연하다. 바이든 측이 핵확산 방지 원칙을 고수하는 현상유지론자들이라면, 트럼프 측은 필요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현상변경론자들이다. 빅딜로 농축·재처리 길을 열 여지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 조건으로 농축·재처리를 요구하자 협상을 시작한 전례도 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도 비슷하고 기질도 유사하다. 최근 세종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한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윤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트럼프 진영의 안보 책사가 이런 언급을 한 것을 보면 트럼프 측도 윤 정부와의 협력에 대비해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잘하면 이명박·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처럼 동맹 강화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승세를 탄다고 해서 대선 승부가 결정 난 것은 아니다. 11월 대선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로 인한 패색에 낙담할 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에 긴장할 일도 아니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대승적 차원에서 대담하게 주고받는 협상 전략을 플랜 B 차원에서 마련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일본과 공조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외교도 내치의 연장이다. 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30% 안팎의 지지율로는 외교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외교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으로 국내 지지율부터 끌어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