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종 노릇… 서민 부담 경감” 대통령 발언 집값 불안 도화선 금리 누르고 정책 대출은 봇물
불신 키우는 안이한 국토장관 DSR 서두르고 공급 확 늘려야 정치 개입 놔두면 시장은 복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 하나는 자신 있다”고 했지만, 끔찍한 실패로 끝났다. 윤석열 정부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지난해와 똑같은 집값 파동이 현재진행형이다. 집권 초인 2022년에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은 하향 안정을 유지했다. 불길한 조짐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9월 들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평소의 두 배인 3000건을 넘었다. 대출금리가 7%를 넘는데도 시장은 뜨거웠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우회하는 정책 모기지가 범인이었다. 4∼9월 주택담보대출이 34조 원 늘어났는데 절반에 가까운 15조 원이 정책 대출이었다. 정부가 “주거 사다리”라고 자랑하던 특례보금자리론이 불쏘시개였다. 4% 금리에 DSR 적용도 안 받고, 소득 제한마저 없어 40조 원이나 풀려나갔다.
역주행은 윤 대통령이 ‘은행 돈 잔치’를 질타하면서 시작됐다. “서민들이 은행의 종이냐”는 발언까지 나오자 금융감독원이 은행 창구까지 나가 무자비하게 대출금리를 짓눌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주담대 금리가 4%대로 떨어지면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통화정책 무력화로 부동산 시장은 연착륙을 넘어 과열로 치달았다.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라는 맹신이 번졌다. 당초 특례보금자리론은 서민들 가계 부채의 질(質)을 개선하기 위한 ‘고정금리 대환대출용’이라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59%가 신규 주택 구입에 나갔다. 소득 제한까지 풀리면서 아예 고소득층용 내 집 마련 대출로 변질돼 버렸다. 뒤늦게 지난해 10월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을 폐지하고 나서야 집값은 안정을 되찾았다.
올해도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첫 단추를 눌렀다. 1월 17일 첫 민생토론회에서 상생 금융을 강조하며 서민들의 이자 부담 경감을 지시했다. 곧바로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이 봇물 터지듯 풀리고 신생아특례대출까지 가세했다. 정부발(發) ‘낮은 금리 갈아타기’ 열풍이 불었다. 6월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전월 대비 6조3000억 원 늘었는데, 이 중 60.3%인 3조8000억 원이 정책 대출인 디딤돌·버팀목 대출이었다. 여기에다 금융위원회는 7월로 예정됐던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을 9월로 미뤄 버렸다. 가산금리를 높이고 대출 한도를 줄여 무분별한 대출에 제동을 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헛발질하고 있다. 집값 급등 통계가 쏟아지는데도 “일시적인 잔등락”이라며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우긴다. 이번 사태의 배경 중 하나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공급 감소가 꼽힌다. 인건비와 원자재 값이 급등해 착공이 늦어지거나 분양가가 치솟은 탓이다. 그 결과 정부가 최근 2년간 서울에 19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공급된 물량은 3만5000가구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집값을 잡는 해법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똑같다. 수요 측면에서 정책 대출을 줄이고, 공급 측면에선 시장 예상을 웃도는 공급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DSR 2단계 시행도 서둘러 더 이상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흘러들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뒤늦게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 찍어내겠다”던 제2의 김현미는 보고 싶지 않다.
정치권이 서민을 들먹이거나 은행의 ‘돈장사’를 손보겠다고 할 때마다 집값이 요동쳤다. 결국, 낮은 금리로 대량의 유동성이 풀려 부동산을 자극하기 일쑤였다. 부동산 실패에는 문재인 정부의 원죄가 압도적이지만, 이를 해결하겠다고 한 윤 정부가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 저지르면 바보, 세 번째는 공범이란 말이 있다. 국민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자칫 윤 정부가 무능을 넘어 공범으로 지목되지 않을까 두렵다.
경제는 정치와 근본부터 다르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에 정치가 함부로 개입하면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이른바 ‘시장의 복수’다.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던 윤 대통령이 서민들을 내세워 자꾸 금리에 개입하면서 집값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 안정 없이는 국정 지지율 회복은 어렵다. 시장 실패보다 더 위험한 것이 정부 실패다. 정치논리가 시장원리를 압도해선 안 된다.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