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의 ‘writing’, 127×90×12㎝, 합성수지, 2004.
이용덕의 ‘writing’, 127×90×12㎝, 합성수지, 2004.


해를 향하는 것을 양(陽), 등지고 있는 것을 음(陰)이라 한다. 이 양자의 조화적 상호작용이 곧 세계이다. 이를 상징화한 태극 문양은 볼수록 절묘한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미술에서도 음양의 조화는 당위성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해 온 서구의 미술을 상고해볼 때 어떤가? 적어도 조화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의 성찰이 이용덕 조형의 출발점이다. 유학 시절 유럽에서 경험한 미술은 빛을 중심으로 한, 즉 양이 지배하는 세계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40여 년간 실루엣 양식이나 음각 조각을 일관성 있게 추구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작가의 논리와 서사는 서구 미술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반전이다.

작품을 마주하는 동안 관찰자가 움직일 때, 상호작용을 하는 인터랙티브는 심미적으로나 감각적으로도 반응이 폭발적이다. 작품 이미지가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효과는 음각이 주는 마법이다. 이제 잠시만 감각적 묘미의 탐닉을 멈추자. 이 양식이 던진 미술사적 명제와 그 의의를 주목해야 할 때이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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