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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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2778명 투숙중 생 마감
1인 고객 ‘극단선택’ 사례 늘며
일부 고급 호텔 숙박 규정 바꿔
“만일 대비해 아예 가능성 차단”


“저희 호텔에서는 혼자서 주무시면 안 돼요.”

지난 4일 홀로 바다 여행을 위해 강원 지역에 위치한 4성급 오션뷰 호텔을 방문한 박모(40) 씨는 객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당했다. 극단적 선택 위험 때문에 “1인 숙박은 안 받는다”는 호텔 측 규정 때문이었다. 박 씨는 “2주 전에 예약을 했고, 예약 인원을 1인으로 명시하기도 했다”며 거절 이유를 물었지만 호텔 측은 ‘만일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응급상황 대처에 어렵다’는 식의 애매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박 씨는 “극단적 선택을 할까 봐 그런 것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마지못해 호텔 측은 “그렇다”고 답했다. 결국 박 씨 예약은 취소됐고 박 씨는 지하주차장에 주차한 차에서 하룻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다.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 내부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 내부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23일 업계에 따르면 고급 호텔에서 생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고객의 사례가 잇따르면서 ‘1인 숙박’을 거절하는 호텔들이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혼자 부산에 가서 바다도 보고 호캉스를 즐기려고 호텔을 예약했는데, 체크인하는 과정에서 1인 숙박은 안 받는다며 거절당했다” 등의 후기를 여러 개 찾아볼 수 있다.

강원 지역 호텔 관계자는 “호텔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드러난 것보다 더 많다”며 “경찰 조사도 받아야 하고 복잡한 일이 생기니 아예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가진 한국의 우울한 단면이다.

숙박업소는 자택과 공공장소(주차장, 공원 등)에 이어 극단적 선택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로 꼽힌다. 실제 지난해 12월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버였던 김용호 씨가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투신해 호텔 직원에 의해 숨진 채로 발견된 바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전국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0년 동안 총 2778명이 숙박업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숙박업소에서 자살사망자 발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는 관광업이 활성화되고 바다가 위치한 부산이 1위, 강원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강원 지역 자살사망자 중 주민등록지가 강원이 아닌 ‘관외 사망자’ 비율은 77%에 달한다.

부산의 한 호텔에서 근무하는 장모(32) 씨는 “혼자 오는 손님,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인 경우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손님들이 과도를 빌리는 경우에도 공개된 장소인 라운지에서 사용하고 반납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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