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맙습니다
앤더슨 선생님 <하>하>
우리가 귀국하고도 그분 댁은 고향 집으로 남았다. 미국의 그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방게 드나들 듯했다. 그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니 그분의 손주들을 불러 친구가 되도록 배려해 줬다.
자기 아들을 키울 때 가지고 놀던 나무 블록을 내놓고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집을 짓기도 하고 탑을 쌓기도 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앉아서 어울려 줬다. 커다란 아빠 곰과 꼬물거리는 새끼 곰들의 놀이 장면 같았다.
그러고는 돌아올 때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사서 읽으라는 말과 함께 각자 봉투 하나씩을 손에 쥐여 줬다. 돌아와 열어 보니 백 달러짜리가 한 장씩 들어 있었다. 현금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을 본 적이 없기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그때의 시간이 눈에 선한지 아들 녀석이 풀어내는 추억들이 파노라마 돌아가듯 선명하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또렷이 기억할 만큼 어린 나이에도 감동이 크고 특별해서, 자신만의 동화(童話)가 됐나 보다. 그렇게 선생님의 애정은 시간과 국경을 넘나들며 우리 가슴에 새겨졌다.
1990년대 중반 학술대회 참석차 선생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다. 누옥이지만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하도록 했다. 연립주택이 주류를 이루던 동네의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 때였다. 주방 한쪽의 옹색한 식탁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눴다. 잠시 대화가 끊기자 그분이 특유의 낮은 목소리보다 더 낮고 묵직하게, 그리고 띄엄띄엄 말했다.
“I thought you’d live better than this….”
흔들리는 뒷말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우리의 사는 모습이 생각했던 것보다 초라했나 보다. 분가한 자식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어버이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그분의 애틋한 마음이 내게는 충만감으로 다가왔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는 듯 내 마음은 오히려 따스해졌다.
남편은 그분을 소나무 같은 분이라고 회상한다. 그의 마음속에 늘 푸른 거목으로 남아서 향기도 주고 그늘도 드리우며, 그의 학문적이고 심리적인 안식처가 돼 주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그분이 실천했던 몇 가지 방식을 적용하는 걸 보면 영원한 사표(師表)임에 틀림없다. 나는 사모님이 베풀던 넓고 깊은 배려와 사랑을 흉내 내보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함을 안다.
퇴직 후 선생님은 취미로 목공예를 배운다고 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무렵 아담한 보석 상자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솔향기 진한 소나무 판을 깎고, 사포로 밀어서 매끈하게 만든 그것은 수제품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완벽하다. 꽃문양을 새겨 넣은 상자의 뚜껑이며 면마다 각기 다른 음각들이 섬세한 그분의 성품을 보는 듯하다. 빨간 융단으로 곱게 마무리한 상자의 내부를 보니 크고 뭉툭한 그분의 손이 떠오른다. 울컥 솟는 그리움에 가슴도 붉은 융단처럼 물이 든다. 뚜껑을 열 때마다 울리는 차임벨 소리가 온화한 선생님의 음성으로 다가온다.
“허허허, 이제 그만하면 잘 살고 있네.”
올겨울에는 흐뭇한 웃음으로 찾아오실까, 고맙고 그리운 선생님.
변명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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