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맞벌이로 현금 7억 원을 모은 친구 A(40)는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 매수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올봄만 해도 12억∼13억 원에 실거래가 찍혔다. 그런데 이달 들어 10여 개가 넘었던 매물이 1∼2개로 자취를 감췄고 호가는 15억∼16억 원으로 뛰었다. 도대체 누가 15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이 아파트를 산단 말인지 기가 막히지만 매수를 포기하자니 불안감이 든다. 시세가 계속 올라 17억, 18억 원까지 갈까 봐서다. 매수를 고민하다가도 불과 1년 전만 해도 언론에 도배가 됐던 ‘영끌족’ 기사의 주인공이 내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면 영끌족은 어떤 이들인가? 코로나19 이후 넘치는 유동성이 자산 시장으로 유입된 버블기(2021∼2022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한때 월 400건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아파트값이 단기간에 폭등하자 수요도 급감한 것이다. 그럼에도 집을 산 ‘영끌족’ 대부분 3040 실수요자들이었고, 대출 규제가 워낙 강해 감당 못 할 정도로 많은 대출을 받을 순 없었다. 매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세가 급락한 탓에 한동안 속은 쓰렸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좋은 투자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거주 편익을 누리면서 반강제로 장기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끌족이 아파트 원리금을 납입하며 내 집에 실거주하는 동안 시장은 되살아났다.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 고점 돌파거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년 만에 7000건대를 넘어섰다. 정부의 확신에 가득 찬 말마따나 추세적인 상승으로의 전환은 아니며 지역적, 일시적 잔등락 일 수 있다. 아직 오르지 않은 지역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눈독 들이고 있었던 동네의 그 아파트만은 유독 시세가 뛰어 오른다.

1순위 지역의 집값이 최근에 급등했다면 2020년 가격대에서 크게 오르지 않은 플랜B, 플랜C 단지를 노려볼 수 있다. 학군, 교통 등 여러 주거 요소 중에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하자. 내가 거주해도 좋은 지역에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매물이 있다면 ‘바이앤드홀드(매수 후 보유 유지)’해도 좋겠다. 최저점에 완벽한 매물을 매수해 내 집 마련과 막대한 시세 차익까지 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그런 운은 인력으로 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의 잔등락 속에서 허우적대기보다 내 집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게 낫다.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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