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는 1943년 소설 ‘어린 왕자’가 출간된 이듬해 정찰 비행 중 실종됐다. 오른쪽 위 사진은 영어판 초판본 표지로, 삽화를 그가 직접 그렸다.  자료사진
생텍쥐페리는 1943년 소설 ‘어린 왕자’가 출간된 이듬해 정찰 비행 중 실종됐다. 오른쪽 위 사진은 영어판 초판본 표지로, 삽화를 그가 직접 그렸다.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7월 31일, 44세의 한 연합군 조종사가 오전 8시 45분 P38 라이트닝기를 타고 정찰 임무를 위해 지중해의 코르시카 기지를 떠났다. 귀환 예정 시간인 낮 12시 30분이 지났음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2시 30분, 연료가 바닥날 때가 됐지만 아무런 교신도 없었다. 오후 3시 30분에 군의 공식적인 보고가 있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소령 실종’.

소설 ‘어린 왕자’로 잘 알려진 생텍쥐페리는 작가이자 비행사였다. 1900년 프랑스 리옹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때 비행기를 타본 후 조종사의 꿈을 품었다.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면허를 따고 제대 후 항공사에 취직해 우편기를 조종했다. 1926년 첫 작품을 발표했고, 자신의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야간비행’(1931), ‘인간의 대지’(1939) 등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사막의 조종사도 파리∼사이공 최단 비행기록 단축 신기록에 도전하다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했던 경험에서 탄생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조종사로 참전했으나 이듬해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어느 날 뉴욕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생텍쥐페리는 흰 냅킨에 그가 평소에 자주 끄적이던 한 소년을 그렸다. 그림을 본 한 출판업자가 뭐냐고 물었다. “별것 아닙니다.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 한 어린 녀석이지요.” 그러자 출판업자는 그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이듬해인 1943년 ‘어린 왕자’가 영어와 불어로 출간됐다. 얼마 후 그는 프랑스군 조종사로 재입대했다. 1944년 7월 정찰 비행을 위해 날아오른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격추, 사고, 자살 등 온갖 설들이 무성했다.

세월이 흘러 1998년 프랑스 마르세유 근해에서 생텍쥐페리와 아내 콘수엘로의 이름이 새겨진 은팔찌가 어부의 그물에 걸렸다. 몇 년 뒤에는 그가 탔던 비행기의 잔해가 발견됐다. 2008년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조종사였던 호르스트 리페르트가 ‘생텍쥐페리, 최후의 비밀’이란 저서에서 자신이 생텍쥐페리가 몰던 정찰기를 요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종된 지 올해로 80년, 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를 기리기 위해 1975년 발견된 소행성에 ‘2578 생텍쥐페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98년 발견된 소행성 45 외제니아의 작은 위성은 ‘프티 프랭스(어린 왕자)’로 불린다. 유로화 통용 전 프랑스 50프랑 지폐에는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가 그려져 수집가들의 인기를 모았다. 소설 ‘어린 왕자’는 전 세계 300여 개 언어로 번역돼 1억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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