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연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의 일상 대화 중 3분의 2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뒷담화를 할 때면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유명인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들으면 뇌 보상 시스템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심리·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뒷담화는 그저 ‘재미’를 넘어 인간사회의 중요 ‘구성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남 이야기를 함께 하며 누가 친구인지 적인지,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날로그 시절의 낭만적 옛이야기가 돼가는 듯하다. 본능이고 오락이며 사회 구성력인 뒷담화는 디지털을 만나 방향을 틀었다. 돈벌이를 위해 자극을 높여 당사자를 몰아붙이고, 사회를 무너뜨리고, 우리 마음을 황폐화시키는 폭력이 됐다. 유튜브를 비롯해 온라인에는 확인되지 않은 폭로와 한눈에 봐도 가짜인 자극적 콘텐츠가 넘쳐난다. 돈, 자극과 쾌락, 디지털이 만나 만들어진 탐닉 사회. 그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 1000만 유튜버 쯔양 사태다.
쯔양 사태는 지난 10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사이버 레커들이 과거를 빌미로 쯔양을 협박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시작됐다. 온라인에서 특정 이슈에 대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작해 빠르게 퍼트리는 사이버 레커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유명 유튜버가 사이버 레커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했고 K-팝 가수 고 설리와 구하라도 피해자였다. 마약 투약 의혹을 받은 배우 이선균이 사이버 레커들의 사적 녹취록 공개에 시달리다 숨진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이 거듭되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무감각해지고 있다. 쯔양 사건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유튜버였기에 화제몰이를 하며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쯔양이 전 남자친구로부터 폭행과 협박에 시달렸다는 그의 과거가 낱낱이 공개됐다. 이는 다시 자극적 콘텐츠로 만들어졌다. 교제폭력이라는 아픔을 들춰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2차 가해였다. 그렇다면 지난해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8명에 이르지만, 여전히 사적인 관계에 공권력을 작동할 수 있느냐는 인식에 기댄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도 이번 사건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남자친구의 변호사가 사이버 레커에게 쯔양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는 황당한 사실은 땅에 떨어진 직업윤리도 공범임을 드러낸다.
문제는, 사이버 레커를 포함해 폭력적인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대책이 별달리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가짜뉴스, 명예훼손 피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유튜브는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 정부에는 딱히 규제할 방법이 없으니 고소당해도 벌금만 약간 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반면 전 세계는 적극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8월부터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시행해 불법·유해 콘텐츠 유포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도 ‘플랫폼은 불법 콘텐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통신법상의 면책 조항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뉴욕주 등은 SNS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콘텐츠 소비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디지털 세계에 거짓말과 가짜가 가득하지만,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가짜라 해도 문제 삼지 않는다. 호기심과 자극이 충족되면 그다음 자극을 향해 갈 뿐이다. 한 철학자의 말처럼 “진실은 지난날의 짧은 에피소드”가 됐다.
그러는 사이에 소비자 역시 피해자가 된다. 한 번 클릭하면 데이터 알고리즘은 기가 막히게 가장 자극적인 콘텐츠로 데려다준다. 이에 대한 경고는 쏟아지고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만 좇다 인간 뇌는 파충류 뇌가 될 것이라는 경고,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을 원하다 결국 중독에 이르러 그 이상의 고통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 무감각한 비인간 시대에 당도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디지털 시대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해 연구해온 독일 신경과학자 요아힘 바우어는 책 ‘현실 없는 현실’에서 디지털 자극 중독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건 결국 개인이라 했다. 우리에겐 클릭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폭력적 콘텐츠 시대, 클릭하지 않을 권리, 클릭하지 않을 의무가 더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