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립습니다 - 나의 어머니 박연옥(1953~2024)
장마의 흐린 하늘 올려보면, 아직도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께서는 왜 서둘러 하늘나라로 가셔야만 했는지?
올해 1월,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에도 어머니께서는 예후가 좋으셨다. 그런데, 어버이날 심정지로 다시 쓰러지신 후,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하였지만, 임종과정에 드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병실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랑해요, 어머니. 기적을 믿어요’라고 고백하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숨은 하루하루 희미해져 갔고, 결국 한 달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어머니께서는 아직 칠순밖에 되지 않으셨고, 작년 가을까지 건강검진에서 아무 이상 없으시다는 진단을 받으셨기에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오래일 줄만 알았다. 어머니께서는 입버릇처럼 딸과 프랑스 여행을 가고 싶다 하셨다. 그렇지만 형편이 녹록하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만 왔는데 어머니께서는 더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어머니께서는 아름다운 분이셨다. 서울예술대 연극과에서 배우의 꿈을 키우셨던 어머니께서는 첫딸인 나를 낳으신 이후로, 오롯이 자신의 삶을 가정을 위해 바치셨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박애주의자셨던 어머니께서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으셨다. 교회 공동체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셨고, 환경운동연합에서 ‘공동의 집’인 지구를 위해 일하셨으며, 바르게살기위원회에서 가난한 이웃을 도우러 다니셨다. 어머니의 모성은 성모 마리아와 같은 영적 모성이었다. 당신의 아들딸만 잘되라고 기도하시는 모성이 아니라, 이 세상에 병 들고 가난한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하시는 영적 모성이었다.
매일 습관처럼 하는 묵주기도였는데, 어머니께서 임종과정에 드신 즈음에야 ‘환희의 신비’의 의미가 내게 빛처럼 다가왔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아 기르신 그 사랑이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사랑의 본보기이자,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늘 아래,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사랑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깨달음의 때는 늦었다. 이제,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본받으며 살리라.
딸 오주리(가톨릭관동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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