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공작, 이 용어는 일반인에게는 금기(禁忌)의 단어로 오랜 세월 정보기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는지 영화가 아닌 현실 언론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가정보원에 이어 군 정보의 ‘심장부’격인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해외 요원 신상 정보까지 북한에 유출돼 ‘정보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정보사 소속 군무원이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다수의 ‘블랙 요원’과 전체 부대원 현황 등이 담긴 2, 3급 기밀을 중국 동포(조선족)에게 파일 형태로 유출했다. 블랙 요원 리스트가 북한에 유출될 경우 해외 군 정보망은 ‘궤멸’ 수준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비밀주의로 일관한 방첩사의 초동 수사 부실 여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보 유출의 고의성과 접촉 경로 및 내부 공모 여부 등을 철저히 추적해 발본색원해야 한다.
보안 참사(慘事)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근본적인 보완책을 수립하지 않으니 심각한 사고가 재발한다. 2018년에도 해외 요원 신상 정보 109건을 수년에 걸쳐 외국 정보 요원에게 팔아넘긴 사건이 있었다. 대북 첩보 전문기관인 정보사에서 정보 유출이 재발한 것은 개탄스럽다. 국가정보원도 최근 수미 테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해외 요원의 엉성한 활동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철저한 원인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정치의 정보기관 영역 침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 정보 수집 역량이 훼손됐다. 문재인 정부는 국군기무사령부를 국군안보지원사령부로 바꾸면서 요원 30%를 감축하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박탈해 방첩 역량과 기강을 무너뜨렸다. 10∼20년 이상 헌신해온 공작관들의 자긍심은 추락했다. 정보 문외한이 갑자기 조직에서 승진하고 비전문가가 조직에 감투를 쓰고 낙하산으로 날아온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8월 문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캠프 인사였던 조모 씨가 채용 기준에 미달하는데도 국정원 관계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으로 특혜 채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다음은, 요원들의 기강 해이와 안보 의식 저하다. 군 장성들조차 함부로 볼 수 없는 해외 블랙 요원 신상 등을 군무원이 개인 노트북에 저장하고, 해외로 유출될 때까지 군 내부에서 감지하지 못한 것은 철저한 정보 관리 실패다. 내부 요원들의 정보 관리는 정보기관의 생명이다. 내부조차 관리하지 못하는데 외부 정보 수집은 어불성설이다. 과거엔 금기시됐던 정보 요원의 방송 출연 등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등 조직 내 기강 해이가 가속했다. 실제로 2022년 지상파 예능 방송에 정보사 요원 출신이 직접 출연하고 일부 요원은 유튜브 방송으로 수익을 올린다. 직무상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입사 선서와 행동지침은 어디로 갔는지 이해 불가다.
끝으로, 사명감만 가지고 정보 요원들을 퇴직 후에도 현직처럼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퇴직 직원 관리 매뉴얼을 벤치마킹해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10년은 퇴사 이후를 관리해야 한다. 무명의 헌신에 대해서는 보상이 필요하다. 다만, 일탈은 사전에 철저하게 차단하는 시스템 구축이 최우선이다. 정보기관에 대한 고강도 점검은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