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모합니다 - 후소 김여정 시인(1933∼2024)
후소(後笑) 김여정(본명 김정순) 시인이 가셨다는 소식을 숙제 중에 들었다. 내 피붙이 중 유일하게 남은 94세의 이모님을 뵈러 아내와 함께 남도길에 오른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시인이 아니라서인지 돌고 돌아 뒤늦게 들어온 소식은 후소 선생님이 가신 다음 날 늦게였다. 이를 어쩐다. 하지만 이번에 못 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나름의 숙제를 포기하기엔 마음도 시간도 너무 급했다. 후소 선생 소식을 무거운 추로 가슴에 품고 6월 6일 겨우 숙제를 하고 남도길을 벗어나는 내게는 이모님을 다시 또 뵐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하나와 오늘 향년 91세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시는 후소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도 못 하는 죄송스러움의 두 마음이 영 마음을 편치 못하게 했다.
사실 나는 40여 년 수필만을 썼기에 시인들과의 교류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김여정 시인은 꽤 많이 뵈었다. 2005년 제20회 동포문학상 대상을 받은 내게 선생님은 나도 15년 전에 이 상을 받았어요 하며 손을 잡아 축하해 주셨다. 그렇다 해도 시단에서만도 챙길 분이 많을 텐데 1474쪽이나 되는 팔순 기념 그 엄청난 ‘김여정 시전집’을 친히 사인하여 보내주셨을 때는 감사함보다 송구한 마음이 더 앞섰다.
그 ‘김여정 시전집’을 펼쳐본다. 문학은 올래길이요, 차마고도라시며 고독·고통의 인생 역정에서 동거자요, 동반자이기에 곧 당신의 삶 자체였다는 머리말에 정중히 동의하며 경의를 표한다.
선생은 193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희대학원 국문학과 석사를 하셨으며 1968년 ‘화음(和音)’ ‘편지’ ‘남해도’가 신석초 선생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셨다. 등단 다음 해인 1969년 처녀시집 ‘화음(和音)’을 시작으로 다수의 시집을 내셨다. 시선집으로 ‘레몬의 바다’와 수필집으로 ‘고독이 불탈 때’ 등을 펴내셨고. 시 해설집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등을 출간하셨다. 그 외에도 공동 수필집(홍윤숙, 천경자, 박완서, 이해인, 김여정) ‘사랑은 고통받는 기쁨이더라’와 독일에 살고 있는 수필가요, 시인인 딸 유한나와 함께 낸 모녀 시집 ‘풀꽃 목걸이’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권의 시전집을 내신 분은 거의 없지 않을까. 1993년 회갑기념으로 낸 ‘김여정 시전집’, 그리고 20년 후 팔순기념으로 다시 낸 ‘김여정 시전집’은 김여정 문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문학관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은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많은 상도 받으셨다.
선생의 문학은 자란자란 가슴으로 스며들게 한다. 나는 월간 ‘한국수필’ 2022년 7월호에 선생께 시를 부탁드렸다. 그렇게 실린 권두시가 ‘푸른 산아’다. ‘할 말은 모조리 / 푸른 잎으로 피워내어 / 햇살에 반짝반짝 닦아 / 내 머리칼에 달아주는 / 듬직한 나의 남자 / 푸른 산아’ 선생의 그런 마음이 그 많은 시를 샘솟게 하지 않았을까. 나는 선생의 시 ‘은난초꽃’을 특히 좋아한다. ‘울울한 나무 그늘에 없는 듯 조용히 / 해맑은 미소 머금고 있는 은난초꽃’ 후소 선생이야말로 은밀한 광택, 난초의 기품과 은은한 향기를 두루 갖춘 청아한 은난초꽃이 아닐까.
고향 진주를 사랑하셨던 시인, 당신의 호 후소처럼 잔잔한 미소가 끊이지 않고 여운처럼 남게 하던 시인. 진주여고, 동구여중, 장충여중, 세륜중 교장으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육자의 삶을 사신 날들. 우리는 선생님의 삶과 시에서 선생님을 만났고 남기신 시와 삶을 보고 선생님을 느낍니다. 한데 그 선생님을 이젠 다시 볼 수 없다는 이 암담함을 어찌할지요. 세월이 빠르다더니 선생님께서 가신 6월 4일도 그새 두 달이 되어갑니다. 여름 바다에 내리는 햇살처럼 더욱 짙어지는 그리움 가득 이젠 남기신 시와 수필들로 선생님을 그리워합니다. 먼저 가 계신 그곳으로 언젠가 우리도 이를 때 손잡아 반가이 맞아 주소서.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의 시와 삶까지 모두 사랑합니다.
최원현(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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