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은 정치부 차장

축구나 농구 경기 심판은 선수의 반칙성 플레이에 대해 휘슬을 불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선수는 경기 초반부터 태클의 수위를 달리하며 ‘심판의 기준’을 확인한 뒤, 기준을 조금 넘는 수준의 반칙을 의도적으로 몇 차례 해본다. 심판이 멈칫하며 휘슬을 불지 않는 장면이 반복되면, 심판의 기준은 허물어진다. 이후 일관성을 지켜야 하는 심판은 ‘선수의 기준’에 따라 경기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심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게임에서 영리한 선수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조금씩 확보하는 방법이다.

‘초보 정치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노련한 플레이어다. 정치 경험이 얼마 없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하는 시선도 있지만, 한 대표와 일해 본 사람들은 그를 대체로 전략가로 평가한다. 한 대표는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른 후, 당정관계에 있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윤석열 대통령의 기준을 확인하는 전략적 작업을 꾸준히 벌여 왔다. 한 대표를 잘 아는 한 의원은 “한 대표가 용산을 상대로 어느 선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몇 개월간 시험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퇴장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던 한 대표는 기 싸움 끝에 윤 대통령의 기준을 어느 정도 바꿔 놨다. 당초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 번복에 해당하는 제2부속실 설치에 극히 부정적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지난 1월 김건희여사특검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검토’ 입장을 밝혔지만, 말 그대로 ‘검토만 한다’는 수준이었다. 직제를 수정하는 등 실질적 검토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대표의 영향이 없다고 보기 힘든 대목이다. 윤 대통령도 한 대표와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 통 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한 회동’이 성사됐고,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전당대회 당시 용산 내부에 “한동훈만은 절대 안 된다”는 기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기는 게 우리 편”이라는 기류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사사로운 감정을 따질 만큼 정국이 한가하지 않다. 이를 두 사람 모두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볼 만한 것은 관중이 서서히 열광한다는 점이다. 관중·선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판정 기준을 바꾸는 대통령의 모습이 반갑다. 대외 활동을 하는 영부인을 보좌하는 공식 조직이 생긴다는 것. 의혹 해소 차원에서 영부인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것. 이는 용산에만 낯선 일이지, 국민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들이다. 108석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거대 야당을 앞서고,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윤·한 갈등’이라는 말은 흔히 파국의 용어로 인식된다. 그러나 ‘일극체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당보다는, 갈등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당이 더 건강하다. 중요한 것은 ‘솥은 깨지 않는 일’이다. 국민은 민생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바라보며, ‘먹사니즘’식의 유치한 조어만 반복하는 야당을 치열하게 상대하는 당·정 모습을 기대한다. 그 과정에 ‘국민 눈높이’라는 기준이 작용하면, 국민은 여권에 넉넉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손기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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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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