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방송통신위원장이 취임하면서 8개월 만에 3명의 위원장이 바뀌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6·25전쟁 때 매일 소대장이 바뀌었다는 고지전을 연상케 한다. 이번에도 야당은 위원장 탄핵을 공언하고 있다. 이처럼 편법과 꼼수가 난무하면서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느낌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독임제 부처 중심의 우리 행정조직에서 매우 이례적인 기구다. 2000년 통합방송법으로 처음 도입된 여·야 추천에 의한 합의제 위원회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상징하는 제도였다. 이후 정보통신부와 통합돼 방송·통신을 모두 규율하는 현재의 방통위가 됐다. 지난 15년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했지만, 꾸준히 개선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하지만 몇 차례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위원회의 정치성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취지와는 반대로 더 깊이 종속돼 버렸다. 정치적 안배를 통해 다양성을 구현한다는 목적 자체가 실종됐다.
정치성이 내재된 방송을 규제하는 방통위 역시 태생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공영방송이 선거에서 이긴 여당의 전리품처럼 인식되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야당의 방통위원장 탄핵 공세가 결국 KBS와 MBC 이사 구성 때문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야당의 무차별 탄핵 공세를 대통령 거부권과 임명권으로 겨우 방어하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방송정책이 나올 리 없다. 실제로 지난해 말 이동관 위원장 사퇴 이후 방통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특히, 훨씬 규모가 크고 신속한 대응이 중요한 통신정책은 정쟁에 묻혀 실종된 지 오래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이 끝나자마자 야당은 또 위원장 탄핵소추를 추진한다. 결국, 효율성과 책임성이 약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균형과 다양성을 명분으로 하는 방통위의 본질적 한계를 보여준다. 숙성된 정치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위원회 제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독임제 기구로 회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정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방통위와 공영방송 이사회가 거버넌스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 두 기구의 정치성을 탈색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구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권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대안은 결국 거버넌스를 분산·다원화하는 것이다. 독일의 수신료 위원회 같은 공영방송 재원을 규제하는 기구를 별도로 설치, 운영하는 것도 모색해 볼 수 있다. 또, 각 방송사가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시청자위원회 대신 공영방송 내용을 감독하는 독립적인 시청자 평가기구 같은 것도 대안이다. 이는 공영방송에 대한 감독 기능을 분산해 이사회가 전유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방송을 둘러싼 정쟁으로 실종된 통신정책을 회복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통신 영역을 별도 독임 부처로 분리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상수다. 더구나 정치가 실종되면서 방통위 같은 위원회 기구들은 더욱 형해화하고 있다. 방통위와 공영방송의 내적 다원화가 불가능하다면 외적으로 다원화된 규제 체제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