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신과 의사의 서재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재수를 하는 중인데 그동안 모의고사를 보지 않았다. 하물며 그 전해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고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수능도 보지 않았다. 부모가 현실적인 걱정을 하자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하지 말라고 방에서만 지낸 지 몇 달이라 나를 찾아왔다. 기대치가 무척 높은 만큼 시험으로 검증되는 것이 두려워 아예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마이클 투히그와 클라리사 옹의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수오서재)에서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완벽주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릴 때 기대수준이 높은 부모 틈에서 자라고 오직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때에만 인정을 받고 애정을 획득할 수 있었다. 빈틈없이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고 여기고, 실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이 내재화되어 있으니 긴장도가 높게 유지된다. 부모는 어릴 때 잘해낸 것이 있으면 칭찬은 하지만 “즐기는 것은 OOO을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라면서 바로 다음 목표를 제시한다. 마치 자유형으로 50m를 왕복할 수 있게 되면 바로 배영을 배우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성취를 즐기지 못하고 ‘난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인식이 깊숙이 박힌 채 자란다.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오직 ‘완벽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으니까.
문제는 한 레벨을 클리어해서 위로 올라가 그 위 레벨로 가면 더 강하고 잘하는 친구를 만나서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직장인은 끝없는 오르막을 타다가 지쳐버렸다. 매번 평범해지는 것만도 버겁다고 여기며 애쓰면서 살고 있는데, 그게 교육 사다리를 잘 밟아온 보통의 트랙이라 평범한 삶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한편 어느 날 문득, 실은 내가 어릴 때 가졌던 꿈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깨달음이 오는 수가 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실체가 드러날 순간을 강력히 회피하고 안전한 길만 선택한다. 두 번째 청년의 경우다.
실은 우리 모두 마음 안에는 두 사람과 비슷하게 완벽주의의 지분이 개인차는 있지만 적지 않게 존재한다. 그 덕분에 열심히 살 수 있지만 완벽주의가 절반이 넘어가게 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고 해야만 하는 일에 매몰되기보다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라고 저자들은 충고한다. 주변의 인정에 목을 매며 좌지우지하기보다 내가 정한 삶의 가치를 등대 삼아 정해놓은 방향으로 꾸준히 인생이란 배를 저어나가면 완벽주의는 더 이상 내 삶을 흔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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