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쿄도 동정탑
구단 리에 지음│김영주 옮김│문학동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소설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AI 저작물 논의가 첨예한 가운데 등장해 이목을 끌었지만, 본격 ‘AI 소설’은 아니다. 생성형 AI가 만든 문장은 인물들의 질문에 AI가 답하는 부분이고, 전체의 2%에 불과하다. 다만, 근미래 도시를 상상한 이야기 속에 AI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AI가 아니라 작가의 과감한 상상력과 감식안이다. 작가는 인간을 ‘호모 미셀라빌리스’(동정받아야 할 범죄자)와 ‘호모 펠릭스’(비범죄자)로 나누고, 환경과 범죄의 관계라는 논쟁적 주제를 다각도로 파고든다. 예컨대 범죄자를 ‘가해자 이전에 돌봄과 지원을 받지 못한 최초 피해자’라고 정의하는 소설 속 사회학자는 이렇게 묻는다. “왜 당신은 ‘범죄자’가 아닌가요?” “당신이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건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인가요?” 즉, 그에 따르면 우리가 ‘범죄자’가 아닌 건 태어난 곳이 마침 훌륭한 인격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고, 범죄와 엮이지 않고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게 해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범죄자 동정론(同情論)’을 주도하는 세력은 도쿄 신주쿠 한복판에 71층 거대한 원기둥 형태의 최첨단 교도소(이자 범죄자들을 위한 호텔)를 건설하게 되고, 이야기는 사회학자와 교도소를 설계한 건축가, 그리고 이를 취재하러 온 미국 기자의 시선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자, 찬성인가 반대인가. 독자는 어느새 극심한 대립이 펼쳐지는 도쿄 도심에 서게 되고, 히라노 게이치로 등 아쿠타가와상을 심사한 저명한 작가들이 “독자들을 위한 놀이터가 제대로 마련돼 있다”고, “소설의 가능성을 확대한다”고 호평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인물들이 교도소 이슈를 두고 AI와 대화하는 장면은 ‘인간이 인간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일이 가능한가’라는 근원적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급변하는 시류, 새로운 개념을 따라잡으려 애쓰지만, 그것들은 체득하기도 전에 고착화하거나 사라져버린다. 이미 말과 현실이 동등하지 못한데, 과연 소통이라 부를 만한 게 존재할까. 작가는 이를 두고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은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독백이 된다”고 꼬집는다.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글 안에 수많은 욕망과 지식, 사회 문제를 가득 담고도, 독자들이 충분히 사고할 틈까지 허락한 “그 에너지에 경의를 표한다”(오가와 요코). 184쪽, 1만5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