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세대가 궁궐 나들이를 가고, 기념품을 샀다면 요즘 세대는 궁캉스를 가고, 뮷즈를 산다.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안다면, 궁캉스는 쉽다. ‘궁궐’에 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바캉스’를 결합한 말이고, 뮷즈는 ‘뮤지엄(박물관)’과 ‘굿즈(상품)’를 묶어 축약했다. 외국어를 잔뜩 가져왔을 뿐, 뭐가 다르냐 싶지만, 꽤 다르다. 궁캉스는 쉬는 날의 고궁 방문을 근사한 호텔 가듯 선호하게 된 현상을 드러내고, 뮷즈는 사놓고 처치 곤란했던 과거 기념품들과 달리 돈을 써서 소유할 만한 상품적 가치를 담고 있다.
나이 테스트인지 신조어 수업인지. 어쩌면 둘 다인 장광설을 잘 따라왔다면, 하나만 더. 이것이 이른바 ‘힙 트래디션’이라는 것이다. 전통(tradition)에 ‘멋있고 인기 있다’는 의미로 ‘힙(hip)’을 붙인 말. 최근 20∼30대가 우리 옛것을 ‘힙’한 걸로 여기며, 유서 깊은 궁궐로, 고즈넉한 산사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살 수 있는 박물관으로 몰려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오픈런(문 열자마자 달려가는 것)과 피케팅(피 튀길 정도로 열띤 예매)은 필수. 조계종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2030의 템플스테이(사찰 체험) 신청이 급증해 50% 이상을 차지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도 뮷즈 구매자의 60%가 2030이라고 전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고, 옛것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다고, 요즘 애들은 과거를 모른다는 건 어쩌면 기성세대의 입버릇인 것 같다. 어느새 그 요즘 애들은 옛것을 새로 해석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일상의 놀이로서 즐기고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힙’한 것임을 스스로,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증명해내며 말이다.
고루한 이미지가 강했던 ‘전통문화’가 MZ의 힙이 되자 한편에선 폄훼의 시선을 보낸다. 모든 게 ‘자기 과시’로 수렴되는 SNS 시대의 자장 안에서 발현된, 세대적 특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5분 만에 매진된다는 궁케팅(궁궐+티케팅)에 성공해 다녀온 ‘궁캉스’, 오픈런을 해 간신히 구매한 ‘뮷즈’ 사진을 올리며 ‘좋아요’를 갈구하는 이들에 대해 모든 것이 재미와 놀이, 소비로만 치환한다고 우려한다. 그런데, 이걸 아는지. 한국 MZ들의 ‘힙 트래디션’은 한국적 현상이 아니라, 즉시 글로벌 힙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이들이 열광하며, 실시간 발신하는 그 모든 ‘힙 트래디션’에 외국인들도 매료되고 있다는 것을. 올해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 외국인 입장객은 약 9만5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4.5% 늘어났고,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도 50% 이상 증가했다. 상반기 궁·능의 외국인 관람객 역시 약 157만 명으로, 지난해 동기의 2배 수준. 특히, BTS와 뉴진스가 공연을 해 화제가 된 경복궁은 약 104만500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이제는 낡고 닳은 이 구문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올 휴가엔 ‘궁캉스’ 어떠신지. 더운데도 한복을 포기 못한 청춘들이 힙하다. ‘뮷즈’도 한번 사보시길. MZ가 사랑하는 ‘천년의 미소’(반가사유상 미니어처), 혹은 차가운 소주가 담기면 얼굴이 빨개지는 ‘취객선비술잔’ 추천. 아주 힙한 피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