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eadership - 취임 8개월 조희대 대법원장
인사때 ‘법원장 추천제’ 없애고
실력 위주로 대법관 두루 등용
중도성향 늘어 사법부 신뢰제고
재판지연 해소·전문 법관 확대
여야 막론하고 공감대 형성나서
법원의 정치화 등 폐단 해결사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국민 신뢰 회복’을 강조하며 취임한 지 5일로 약 8개월째를 맞았다. 조 대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거치며 법원의 정치화, 인사 편중 문제 등으로 인해 초래된 사법 불신을 비롯한 각종 폐단을 해결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은 채 지난해 12월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법원 안팎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원칙을 강조하는 리더십 스타일을 통해 대법원을 빠르게 안정시켜 ‘중도 보수 성향의 원칙주의자’다운 면모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도’ 성향 대법관 늘어난 대법원… 사법부 신뢰 회복에 주력 =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것은 법관 인사에서 소위 ‘코드 인사’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에 대해 ‘이념 편향’ 문제를 지적하는 여론이 상당했는데, 이런 우려를 불식하며 사법부 신뢰를 제고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월 취임 후 첫 대법관 인사에서 중도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는 신숙희·엄상필 대법관을 임명 제청했고, 고위 법관 정기인사에서도 김 전 대법원장 체제의 유산이었던 ‘법원장 추천제’를 폐지하고 근무평정이 우수한 법관들을 중심으로 법원장 인사를 단행하며 호평을 받았다. 당시 법원 내부에선 “‘코드 인사’를 배제하고 실력 위주로 법관을 두루 등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 후임으로 2일 취임한 노경필·박영재 대법관 역시 중도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중도·보수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신임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피천거인 수는 105명을 기록해 역대 최대 규모였는데, ‘코드 인사’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피천거인 수도 증가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대법관으로 천거되길 기피하거나,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불신 때문에 천거를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이번에는 거의 없었다는 평가다. 한 법원 관계자는 “김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코드를 중시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고위 법관들이 대법관 임명 절차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조 대법원장은 불필요한 것으로 지적되는 제도에는 과감하게 손을 대며 독립성 강화와 사법부 정상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김 전 대법원장 시절 가동됐던 ‘사법행정자문회의’를 폐지하고, 법적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다시 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양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의 ‘사법농단’ 사태 이후 법원행정처 견제를 목적으로 설치됐다. 하지만 설치 근거가 없을뿐더러 대법원장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 법원행정처에 상근 법관을 7명 증원하고, 공보관과 사법등기국장을 다시 전문성과 이해도가 높은 현직 법관으로 임명했다. 또, 2019년 폐지됐던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도 재개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선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도전에 대해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조 대법원장에 대해 “재판권·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발언들이 정치권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조 대법원장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재판 지연’ 해소, ‘법관 증원’에도 힘써… 사법부 역점 사업에도 주력 = 조 대법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최우선 과제로 꼽은 ‘재판 지연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사법제도 개선을 위해 8개월째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재판 지연 해소는 조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1순위 해결 과제로 지목한 바 있다. 지난 5월에도 조 대법원장은 법관 간담회를 통해 “사법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은 재판 지연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23년 민사 1심 합의부 재판 평균 처리 기간은 473.5일로 2018년 297.1일보다 59.4% 늘어날 정도로 재판 지연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조 대법원장은 다양한 재판 지연 문제 해소 방안을 내놨는데, 이 가운데 법원장이 직접 재판을 맡는 ‘법원장 재판 담당’ 제도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28일에는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김정중(58·사법연수원 26기) 법원장이 직접 재판정에 나와 장기 미제 사건 재판을 심리했다. 김 법원장은 이날 “신속한 재판을 위한 법원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밝혀 조 대법원장이 추진한 제도에 쏠린 관심을 대변했다. 실제로 법원장이 직접 재판 지연을 체감하며 일선 법관들의 재판 속도를 끌어올리게 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밖에도 △사무분담 장기화 △감정제도 개선 △판결서 적정화 △민·형사 심리모델 개선 △전문법원 신설 등을 통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복안이다.
재판 지연 문제 해소를 위한 판사정원법과 법원조직법 개정도 조 대법원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과제다. 판사 정원을 5년에 걸쳐 370명 늘리는 내용으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조 대법원장은 가급적 올해 안으로 법 개정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를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려는 노력 또한 조 대법원장 취임 후 두드러진 점이다.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지난달 16일 “5년 이상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조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지난달 25일 김승원·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개최한 ‘바람직한 법관임용자격 개선 방안’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도 조 대법원장은 수사기관에 대한 사법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사청문회에서 “조건부 구속영장제도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이는 피의자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되 거주지 제한 등 조건을 달아 석방하면서, 조건을 어길 경우에만 신병을 구속하는 제도다.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검찰의 반대로 제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임 김 대법원장 시절 만들어진 제도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도 이뤄질 전망이다. ‘법원장 추천제’는 각 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거쳐 추천한 후보 중에서 법원장이 임명되는 제도였다. 하지만 법원장들이 일선 판사들 눈치를 보느라 재판 지연 문제나 업무 태만 문제를 지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와 폐지됐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불안 요소가 되지 않기 위해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 방안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후민·강한 기자
대법관 시절 ‘Mr. 소수의견’ 별명… 상해치사죄 10대들 누명 벗기기도
■ 조 대법원장은
형벌 부과·인권 균형있게 고려
조희대(67·사법연수원 13기) 대법원장은 법원 내에서 중도 보수 성향의 원칙주의자로 꼽힌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때 주요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많이 내 ‘미스터 소수의견’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 대법원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6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구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대구지방법원장 등을 거쳐 2014년 3월 대법관에 취임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시절 대법원 판례와 법리에 충실하고 주변 관리가 철저해 법원 안팎에서 ‘선비형 법관’으로도 불렸다. 2014년 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 여야 의원들로부터 대체로 ‘흠 없는 공직 생활을 했고, 대법관 후보자로서 결격 사유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고법판사는 조 대법원장에 대해 “‘학’이자 ‘선비’ 같은 분”이라며 “자신에게는 도덕적 기준이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부드러운 분”이라고 전했다. 한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보수·진보를 떠나 실력·인격으로 훌륭한 분”이라며 “무너진 법원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조 대법원장은 무죄추정 원칙 등 헌법 가치를 중시하고, 형벌 부과와 인권 보호의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상해치사죄로 기소된 10대 청소년들의 누명을 벗긴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 사건을 심리하며 가족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수사기관에 한 자백에는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을 바탕으로 이미 유죄가 확정된 다른 청소년들도 재심을 거쳐 누명을 벗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보수적 견해를 주로 냈다. 2018년 양심적 병역 거부를 무죄로 본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조 대법원장은 종교와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 거부는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 2018년 3월 국방부 불온서적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육군 법무관들이 징계를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국기 문란을 초래하고 국가안전보장에 위해가 될 수 있다”며 국방부 징계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조 대법원장의 대법관 시절 별명은 ‘미스터 소수의견’이다.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 또는 의견을 다수 내 왔다. 2019년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선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를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
조 대법원장은 2027년 6월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에 대법원장의 임기인 6년을 다 채우지는 못한다. 차기 대법원장은 출범 1개월 차의 새 대통령이 지명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종료 후에도 계속 자리를 유지할 대법원장을 지명하는 편을 선호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법원 판사들이 지지할 수 있는 적격자가 누구인지에 방점을 두고 대법원장을 물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부장판사는 “정치적 동기를 희생하고 법원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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