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휴일 경호처 청사 金여사 조사
검찰·대통령실 곤란케 한 참사
처벌 힘들수록 수사 엄정해야

총장 패싱, 출장조사보다 심각
文정부 때 윤석열 무시 데자뷔
총장 수사지휘권 未복원 한심


토요일인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건희 여사를 대통령 경호처 부속 청사로 찾아가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을 때 바로 든 생각은 검찰과 대통령실 모두 정무감각이 국민 눈높이와는 한참 다르다는 것이었다. 김 여사를 과도하게 배려하려다 중앙지검과 대통령실이 검찰과 김 여사 모두를 곤란한 지경에 빠트리는 듯했다.

김 여사가 조사받은 사건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명품 가방 수수인데, 둘 다 기소가 힘들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도이치모터스는 주범이 ‘실패한 시세조종’을 이유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딱 한 사람만 기소된 계좌 주인은 무죄가 선고됐다. 문재인 정부 때인데도 검찰이 김 여사와 모친을 기소하지 못했다. 친북 성향 목사가 지난 대선 때 김 여사와의 7시간 통화 내용을 폭로했던 유튜브 방송 ‘서울의소리’ 기자가 사준 디올백을 전달하면서 ‘도촬’한 방송을 보면 무슨 청탁을 하고 뇌물을 준 게 아니라 김 여사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몰카 공작이다.

따라서 뇌물죄는 애초에 성립되기 어렵고, 김영란법으로 의율하기엔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국민 보기에 부적절해도 현행법상 처벌할 방법이 없다면 수사 과정은 더욱 원칙적이고 엄정하게 보여 특혜 조사라는 말이 나올 여지를 둬선 안 됐다. 그리고 처벌이 어렵더라도 사건에 관련된 부적절한 행위들이 있다면 낱낱이 밝혀야 하는데, 검찰의 출장 조사로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휴일 오후에 비공개로 대통령 경호처 부속 청사에서 김 여사를 조사하면서 경호 문제로 검사들이 휴대전화까지 제출한 바람에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게 됐다.

휴일 출장 조사보다 더 어이없는 건, 이런 사실을 검찰총장에게 조사 10시간이 지난 끝 무렵에 알려줬다는 것이다. 보고라기보단 사후 통보에 가깝다. 검찰청사 소환조사 원칙을 강조한 이원석 검찰총장을 무시하기로 작정하고 벌인 처사 같다. 실제 이후에 검찰총장의 진상 파악 지시에 대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보인 사실상의 조사 거부와 수사팀 검사의 사표 제출은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에서 보기 드문 항명 또는 하극상으로 보인다. 과거에 검찰총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이 권력에 굴종한 수사 지시를 내릴 때 지검장·지청장이나 수사팀장이 반발한 적은 가끔 있어 건강성을 유지했는데, 법대로·원칙대로 하라는 검찰총장을 부하 지검장과 검사가 들이받은 건 이례적으로, 검찰이 쑥대밭 됐다는 게 과한 표현이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한 문 정부 때도 대놓고 항명하는 경우는 없었다.

‘총장 패싱’에 대한 서울중앙지검과 법무부 해명도 궁색하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이 없어 보고하면 안 됐다는 것인데, 조사 사실을 사전에 보고하는 게 지휘를 받는 것이란 주장은 ‘오버’다. 수사지휘권은 피의자 소환, 압수수색영장·구속영장 청구, 기소·불기소 판단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문 정부 때 가족이 연루된 사건의 윤석열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박탈을 현 정부에서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복원 지휘도 수사지휘권 발동에 해당한다”며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극도로 제한돼야 한다”고 했는데, 억지스럽다. 정권이 교체되고 검찰총장이 바뀌었는데, 문 정부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발령한 조치를 윤 정부 내내 유지하겠다는 것인가. 김 여사 관련 수사 지휘를 검찰총장이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게 속마음 아닌가. 문 정부의 총장 수사권 박탈을 금과옥조로 모시는 이유는 다른 설명이 어렵다.

이런 문제로 검찰총장과 맞붙은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5월 ‘검찰청사 내 대면조사’를 주장해 온 송경호 지검장을 비롯한 중앙지검의 김 여사 수사 라인이 대거 물갈이된 자리에 들어왔다. 문 정부의 추 장관이 단행한 것과 똑같은, 검찰총장 의사를 무시한 간부 인사 때부터 이번 사태가 잉태됐다고 봐야 한다. 야당이 ‘검수완박’도 부족해 이젠 아예 검찰을 없애고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만들겠다고 벼르는 와중에 어이없는 사태가 터졌다.

김세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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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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