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사실상 실종됐다. ‘야당표’ 정쟁 법안을 막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192석 대 108석의 대결에서 수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주도권을 전혀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번 국회 들어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법안이나 정책을 중심으로 여야 전선이 형성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른바 현안은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선점하고 있다. 국민은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언급한 것은 기억하지만, 국민의힘이 5월 말 의원 워크숍에서 발표한 5대 패키지, 31개 법안은 알지 못한다. 최근 터진 티몬·위메프(티메프) 사건에서도 여당 문제점이 확인된다. 한동훈 대표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묻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당정이 협력해 강구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으나, 당의 대응은 더뎠다. 당정협의는 이달 6일에야 열렸고, 여당이 피해를 본 소비자나 판매자를 만났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전당대회를 거치며 폭발한 내부 갈등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5일 의원총회를 열고 4선 중진인 김상훈 의원을 새 정책위의장으로 추인했다. 한 대표가 지난달 23일 선출된 지 거의 2주나 지나서야 정책위의장 논란을 매듭지은 것이다. 티메프 당정이 늦어진 이유기도 하다. 사실 정책위의장 교체를 둘러싸고 여권 내에서 논란이 벌어진 것 자체가 낯선 일이다. 정책위의장 임기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사의를 표하거나 재신임을 묻는 것이 관례다. 친윤(친윤석열)계가 신임 당 대표를 견제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 12명이 시도지사협의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뜻을 모은 것 역시 의아하게 느껴진 소식이다. 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은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과 나라 발전을 위해서 시도지사들의 역량, 지혜를 모아 나간다는데 당에서 반대한다는 거는 안 맞는다”면서 “당헌에 보면 시도지사가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시도지사가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사례는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찾기 어렵다. 당헌에는 ‘최고위원회의의 요청에 의해 시도지사가 당 주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유 시장 주장과 다소 다르다. 최고위가 광역단체장 참석을 요청한 바도 없고, 주요 회의가 반드시 최고위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당내 견제에 한 대표는 친정체제 강화로 대응했다. 지명직 최고위원에 김종혁 전 조직부총장을 임명하고 사무총장 및 부총장 등 주요 당직에 모두 측근을 앉혔다.
여당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장자(莊子) 칙양 편에서 유래한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벌이는 싸움이라는 뜻으로, 대국에 별 영향이 없는 다툼이나 사소한 승강이를 일컫는다. 총선 참패로 인해 보수 진영이 큰 위기에 빠져 있고 국민연금 개혁 등 민생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보이는 집권당의 행태가 딱 ‘달팽이 뿔 다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