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산업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 중심의 에너지 산업이 이제 재생에너지와 배터리로 대변되는 전력 중심의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석유, 가스, 석탄 위주의 기업은 중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사업모델을 신속히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합병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석유와 가스에서 전기화로 바뀌는 에너지 전환에 발맞춰 중복 투자를 배제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신속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판단된다.
미래 에너지 산업의 핵심은 ‘전기화(Electrification)’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신기술 분야 역시 ‘전력 및 재생에너지 분야(Electrification and renewables)’로 나타났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기술 트렌드 전망 2024’에서 스마트 전력망, 태양광·풍력 발전, 차세대 원전, 에너지 저장 장치 등의 기술을 아우르는 전력 및 재생에너지 분야에 지난 1년 동안 1830억 달러(253조6000억 원)의 투자가 이뤄졌다고 집계했다.
맥킨지는 이번 보고서에서 각 기술 분야의 산업 안착 정도를 5점 척도 점수로 매겼는데, 전력 및 재생에너지는 도입 중간 단계인 3점을 기록했다. 1점은 초기 혁신·탐색 단계이고, 5점은 산업적으로 성숙한 규모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는 전력 및 재생에너지가 초기 혁신 단계를 지나 향후 산업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분야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국내 1위 민간 LNG(액화천연가스) 사업자 SK E&S가 오는 2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을 통과시키면 자산 100조 원, 매출 88조 원 규모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시너지가 기대되는 부분이 바로 전기화로 대표되는 미래 에너지 시장의 경쟁력이다. 이미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배터리·수소 등 저탄소 에너지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민간 발전사인 SK E&S는 전력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전기화 시장을 꽃 피우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특히 전력 인프라를 구축해 미래 전력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온의 배터리 사업과 SK E&S의 분산자원(소규모 전력 공급) 사업 역량을 결합하면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고도화해 전력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사업을 운영하는 식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한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전력 수요 관리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2년의 2배 수준인 1000테라와트시(T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일본의 한 해 전체 전력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전력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만큼 이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할 기업의 탄생은 국가 에너지 관리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탈원전 후유증과 신재생 에너지 불안정성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언제나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번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은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화석연료에서 저탄소에너지로 전환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합리적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