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씻이 할 때가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농업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우리 삶의 중심이 도시로 옮겨진 상황이니 ‘호미씻이’란 말을 알아들을 이가 드물어도 그때가 되었다. 논매기가 끝날 무렵인 음력 7월쯤은 더위가 한창이라 하루쯤은 푹 쉬면서 즐겁게 놀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우리 조상들은 그날을 호미씻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한여름에 다들 떠나는 여름휴가로 생각해도 좋다.

농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필요한 작물을 잘 길러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작물이 자라는 땅은 오로지 그 작물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니 그 땅에는 온갖 것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지만 농부에게는 그저 잡초일 뿐이다. 이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파고, 긁고, 캐낼 도구가 필요한데 이 용도에 특화된 농기구가 바로 호미다. 따라서 호미를 씻어 걸어 놓는 것은 결국 농사일을 하루 쉰다는 의미가 된다.

호미의 생김새와 용도 그리고 이용 빈도를 보면 호미는 우리 고유의 농기구일 듯하다. 그런데 만주어에도 ‘호민(homin)’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호민의 끝소리 ‘ㄴ’은 명사라는 표시이니 결국 만주어와 우리말이 같은 셈이다. 다만 호미는 과거에 ‘호매’나 ‘호믜’였으니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우리말이 좀 더 복잡하니 둘의 관련성도 더 살펴보아야 한다.

만주족과 만주어가 위세를 떨치는 상황이라면 호미의 원조를 두고 싸울 법도 하다. 그런데 만주 땅과 만주족을 품고 있는 중국이 나서지 않고 있으니 그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상이 같다고 여겨지는 한국어와 만주어이니 같은 말에서 갈라져 나와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게다가 걱정할 일도 아닌 것이 우리의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는 중국에서 만든 것과 비교도 안 되는 비싼 가격에 팔려 전 세계의 텃밭과 정원에서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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