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野 단순 다수결 폭주에 與 무력
지지율 2위가 위세, 정치 질식
數 아닌 명분·능력 경쟁이 정치

韓, 논리 더해 해결력 보여야
채상병·金특검 정치력 시험대
국민 설득해야 野 폭주 막아내


의회 정치에서 단순 다수결이 전부란 듯이 달려드는 다수파에 소수파가 맞서는 건, 이만저만 고약한 일이 아니다. 온종일 저주와 증오의 언어를 토해내고 ‘법 조문을 따라 하면 법치’라는 조야(粗野)한 선동가들이 점령한 국회에서 정치는 질식 상태다. 총선 지역구 득표율 50.5%로 63.5%의 의석을 차지하고, 지지율이 27%(한국갤럽)로 2위인 신세인데도 일마다 ‘국민의 뜻’을 참칭하는 골리앗 거야(巨野). 그 위세가 탄핵, 특별법, 청문회 러시로 뻗치고, 소여(小與)는 기지와 용기도 없이 필리버스터가 고작이다. 이를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라 골리앗의 이마를 한방에 명중시켜 쓰러뜨렸다는 다윗의 돌팔매가 떠오를 지경이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일방처리-거부권 쳇바퀴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는 하다. 소수파가 의석수를 뒤집을 수 있는 건 인위적 정계개편밖에 없다. 양극화한 정치 지형과 더불어민주당 단독 170석의 구도에서 국민의힘(108석)만으론 3당 합당 격변 도모는 불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돌멩이가 없어도, 대화와 타협 주문이 공허하게 들려도,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란 비스마르크의 경구라도 믿으면서, 민심을 얻어야 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다. 소수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야 대응법이기도 하다. 이제 그 전장은 명분만으로는 부족하다. 능력이 병행돼야 한다. 다수파가 힘자랑에 나서는 구실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해소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책 주도권이 긴요하다. 소수파여도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여당 프리미엄이 있다.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자주 회동하고 전화통화를 하란 뜻이 아니다. 당정관계 재정립이다. 한 대표가 말했듯이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는 공적 지위로 만나는 것”이다. 그 관계는 애초 ‘원팀’이 아니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 정책 공조를 약속한 정치조직이지만, 민의를 수렴해 국정에 반영되도록 견제하는 국회 교섭단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다’란 구호가 권력 내부 시스템을 원활하게 하자는 취지의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으나,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의 삼권분립 원칙과는 충돌 지점이 많다.

그런 연유로 여당과 정부 간에 정책·법안을 조율하는 당정협의회는 법률이 아닌 국무총리 훈령으로 규정돼 있다. 처음 생긴 건 1982년 전두환-민정당 시절이다. 그전까지 여당은 대통령의 ‘지시 각서’를 이행하는 ‘청와대 여의도 분실’ 처지였는데, 그나마 협의 주체로 대접해준 것이다. 여러 번 개정됐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다시 ‘1호 당원’의 뜻만 좇는 건 퇴행인 셈이다. 임기 중반쯤 공적 쌓기가 급해진 대통령과 정권 재창출이 화두인 여당 간의 대립·갈등은 필연적이다. 그 해결의 중심축은 당이 돼야 한다.

한 대표가 민주당을 향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의제를 던진 건 의미 있는 액션인데, 대중이 원한다는 명분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도권은 협상에서 이견을 해소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낼 때 가능하다. 그게 정치력이다. 민생지원금지원법에 대해서도 “여당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역시 같은 맥락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일이다. 필요하면 정부-야당 간 직통 채널도 열어줘야 한다. 거창한 여·야·정 협의체는 실효성이 없다. 행정부와 원내 1당이 정책 방안을 공유하는 것은 입법 프로세스의 여야 협의 과정이다. 야당이 거부해도 명분을 잃지 않고, 설령 명분을 내줘도 정책 실행의 실리를 얻을 수 있다.

난제는 채상병특검법이다. 민주당은 세 번째 특검법안으로 한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방식의 특검법에 대한 견제가 상당하다. “진실규명을 반대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명분을 고수하려면, 재의 요구의 사유였던 독소 조항을 배제한 대안을 내놓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탄핵 노림수에 말려든다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다. 대통령실과의 조율이 필수적이지만, 당보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의 등을 떠미는 것도 집권당 대표의 책무다. 민주당이 다음 수로 노리는 김건희특검법도 마찬가지다. 용산과 국민 눈높이 사이 시험대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거야의 폭주를 막는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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