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구협회장 맡으며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 투명하게 혁신
동계스포츠 선제 투자하며 빙속 강국 기틀 닦아
"스포츠는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무한한 힘을 가졌고, 우리의 삶에 희망을 주고 평화를 정착시킵니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은 누구보다 스포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008년 내부 분열로 극심한 몸살을 앓던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은 이후, 조직을 수습하고 오랜 기간 한국 탁구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국가적 이벤트인 올림픽 유치에도 발 벗고 나섰다. 조 선대회장은 2009년 9월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안팎으로 뛰었고, 결국 2번의 실패를 딛고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한 지인은 "조 선대회장은 정말로 스포츠를 사랑한 스포츠인이었다"며 "특히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에는 (스포츠 발전을 위해) 스스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배구부터 탁구까지 무한한 스포츠 사랑 = 1969년 창단한 해군배구단을 인수한 대한항공은 2005년 프로배구 원년을 맞아 해당 배구단 팀 명을 ‘점보스’로 바꾸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조 선대회장의 배구 사랑은 이때부터도 각별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어 경기장에 자주 나오지는 않았지만, TV로 점보스의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 봤고, 선수단을 격려할 때는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며 몸 상태를 묻고 칭찬했다고 한다. 2007년 한국배구연맹(KOVO)컵 마산대회 때 1995년 이후 12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오르자 조 선대회장은 "선수들이 마음 놓고 훈련할 전용 체육관을 지으라"고 지시하며 다시 한 번 배구에 대한 무한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조 선대회장은 이따금 배구단을 초청해 식사도 함께하고 격려금도 줬는데 1989년 어느 날 스포츠해설가이자 인하대 배구팀을 맡고 있는 최천식 감독에게 "초등학생인 아들이 배구에 관심이 많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배구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인연으로 아들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배구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만장일치로 대한탁구협회 회장으로 추대된 이후에는 국내 탁구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 선대회장은 특히 국가대표 선발 때 한 점의 비리가 없도록 투명하게 실력을 평가하도록 시스템을 개혁해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 예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기적을 만든 유승민 선수가 왼쪽 무릎 연골 파열 부상으로 탈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다. 5명 중 4명을 우선 선발했는데 유승민은 9위에 머물렀다. 나머지 한 명은 차점자를 올려야 했지만, 파벌 논리가 작동했고 유승민에게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하지만 조 선대회장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스포츠에 특혜는 없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이후 유승민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자동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세계랭킹을 최대한 끌어올린 끝에 런던행 ‘티켓’을 따냈고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었다. 조 선대회장의 ‘독(毒)한’ 원칙과 기준이 유승민에게 ‘약(藥)’이 된 것이다.
스포츠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조 선대회장은 ‘탁구 세계 최강 중국을 이길 과학적인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는데, 특히 영상분석시스템과 과학적인 훈련시스템 구축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조 선대회장은 탁구협회장으로 재임한 12년 동안 120억 원 이상을 쏟아부으며 한국 탁구 발전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 유치와 빙속 스포츠 투자 =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평창". 2011년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했다. 치열한 경쟁을 펼쳐온 평창과 독일의 뮌헨, 프랑스 안시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200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공식 선언한 후 11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대한항공 임원으로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와 조직위원회에서 조 선대회장을 보좌했던 한 인사는 "조 선대회장이 없었다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2009년 평창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취임한 조 선대회장은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지만, 2011년 7월 개최지 선정까지 주어진 시간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조 선대회장은 평창이 앞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배경에 주목했다. 당시 정부는 정부대로,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자치단체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따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체계도 없고 효율도 떨어졌다. 이에 따라 조 선대회장은 취임 즉시 시스템으로 움직이도록 ‘컨트롤타워’부터 만들라고 지시했고 상황실을 설치해 모든 정보가 공유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본인은 물론, 한진그룹의 가용 자원도 총동원했다. 스포츠 외교 무대에 서기 위해 프레젠테이션 개인과외까지 받았고, 한진그룹 엘리트 인력들도 올림픽 유치위원회에 파견했다. 아울러 대한항공 스카이팀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IOC 위원들과 친분을 쌓고 평창 유치의 당위성을 설득해 나갔다.
조 선대회장은 대한항공 내 전사적 지원 체제를 구축하기도 했다. 해외 75개 지점 모두를 포함해 사내에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추진사무국을 창설하고 IOC 위원들의 동향 파악과 정보 수집에 만전을 기했다. 그 결과 IOC 위원이 세계 어느 공항에 나타나든 사무국에서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IOC 올림픽실사단도 대한항공이 이용하는 본 청사를 통해 입국할 수 있도록 했는데, 실사단을 맞아 동행한 조 선대회장은 사진작가답게 실사단이 한국을 떠나기 전 그들의 활동상을 8쪽짜리 화보로 만들어 전달하며 실사단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조 선대회장은 다른 한편으로는 동계스포츠에도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검토를 거친 결과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일약 스타가 된 이승훈 선수와 모태범 선수를 주목하게 됐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지자체 소속이어서 안 그래도 비인기 종목인데 소속 브랜드 파워가 약해 대중성이 더욱 떨어졌다. 조 선대회장은 8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하고 평창에서 대한민국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려면 빙상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조 선대회장은 배구단과 탁구단에 이어 2011년 스피드스케이팅(빙속)팀을 창단하고 이승훈 선수와 모태범 선수를 영입했다. 사상 최초로 지자체가 아닌 기업이 스피드스케이팅 실업팀을 창단해 한국 동계스포츠에 힘을 보탠 것이었다.
조 선대회장은 코치진과 훈련장비, 숙소 등 스피드스케이팅 성장을 위해 투자를 지속했고 두 선수는 마침내 성과로 보답했다. 이승훈 선수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각각 목에 걸었다. 조 선대회장의 7년 투자가 빛을 내는 순간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조 선대회장은 한진그룹 회장직만큼이나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많은 힘을 쏟았을 정도로 한국 스포츠 발전에 진심이었던 분"이라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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