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서면 사과’ 조치도 불복 말싸움식 갈등도 소송 제기 “애들 화해했는데 부모는 싸워” 교사까지 소송 대상 놓이기도
학생 간 경미한 갈등이나 다툼이 ‘학교폭력 소송’으로 비화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소송 자체가 ‘응징’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학폭 조치 엄벌 기조로 법적 다툼이 증가하고 있지만, 학생들 말싸움처럼 가벼운 사안까지 학폭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은 과도하며 학교 내부 시정 장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행정1부는 지난 1월 중학생 A 군이 동급생 B 군과의 분쟁에서 A와 B 군 모두에 내린 서면 사과 조치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학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 군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B 군을 마주친 뒤 팔짱을 끼고 노려보다가 말싸움을 벌였다. 같은 날 B 군은 학생부 교사가 A 군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웃으며 손가락 욕을 했다. 재판부는 “A와 B 군 사이에서 어느 일방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거나 그 행위를 학폭으로 의율해야 할 정도의 큰 잘못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A와 B 군이 교우관계에서 어느 때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기의 학생들이고, 청소년기에 교우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성격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나 감정적 소모 등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도 중학생 C 군이 서울시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낸 ‘조치 없음’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C 군은 동급생 D 군에게 자신의 성기 사이즈를 말하고 야한 그림을 보내 학교폭력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다. C 군이 “D 군이 악의적 소문을 퍼뜨려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한 경우로, 학교 측은 D 군의 행위를 학폭이 아니라고 본 뒤 ‘조치 없음’ 처분을 내렸다. C 군은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C 군의 성적인 발언과 행동으로 인한 피해 사실에 대해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토로하는 행위까지 사회적 상당성을 넘어서는 부적절한 행위라거나 또 다른 학폭 행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이처럼 학폭으로 보기 어려운 사안에도 소송을 제기하는 현상을 두고 학폭 소송이 ‘응징’의 수단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사 출신인 전수민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는 “학폭 관련 절차가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보호자 의사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며 “아이들끼리는 서로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는데 부모들이 싸우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지난해 1월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중학생이 제기한 봉사활동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면서 “최근 학생들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이 교육적 해결 등의 과정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법정이라는 장으로 그 무대를 옮겨오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분쟁이 법률적 분쟁으로 비화하면 교육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결문에 적기도 했다.
학생 간 싸움뿐 아니라 교사에 대한 불만도 법정으로 가고 있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학폭 사안 처리가 끝났음에도 학부모가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교직원을 괴롭힌다는 상담이 지난해에만 28건 접수됐다. 교육부는 지난 2021년 학폭 소송을 당한 교직원에게 소송비를 지원하는 법 개정에 나섰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