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방글라데시 정부 붕괴 초래한
독립유공자 자녀 공직 할당제
최빈국 졸업 앞두고 유혈사태

민주당 추진 민주화유공자법
혜택 등 특권영구화 시도하면
한국이 방글라데시 꼴 날 수도


남아시아 인도와 미얀마 사이에 위치한 방글라데시가 정치적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독립 영웅의 딸로 1·2차에 걸쳐 20년간 집권한 셰이크 하시나(76) 총리가 유혈시위 사태 속에서 인도로 탈출하면서 정권이 무너졌다. 국가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과도정부 최고 고문으로서 정국 혼란을 수습하고 총선을 관리할 책임을 맡았지만, 무너진 질서가 정상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방글라데시 파국의 도화선은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 공직 30% 할당제 부활이다. 1971년 파키스탄과 독립전쟁을 치른 뒤 방글라데시는 건국유공자 자녀 공직 진출 쿼터제를 만들었다. 이후 이 제도는 국가 분열을 낳는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법적 분쟁이 잇따랐다. 2018년 하시나 총리가 행정명령으로 할당제 폐지를 결정했지만, 지난 6월 고등법원은 행정명령 중지 판결을 내려 쿼터제 부활이 예고됐다. 이후 대학가가 술렁이자 대법원은 유공자 후손 쿼터를 5%로 줄이는 판결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학가 시위는 반정부 유혈 사태로 번졌고 사망자도 300명이 넘는다.

방글라데시가 걸어온 지난 반세기는 대한민국과 닮은 점이 많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된 후 파키스탄과 독립전쟁을 거쳐 정부를 수립해 현재의 방글라데시가 됐다. 정정 불안 속에서도 여성 노동력에 기반해 자라, H&M 등 외국 의류업체들을 유치해 비약적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2022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700달러로 파키스탄을 앞섰고, 인도와는 엇비슷하다.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섬유산업 덕분에 2026년엔 유엔 지정 최빈국(LDC)에서도 벗어난다. 유엔은 2021년 말 ‘방글라데시 LDC 졸업 결의안’을 채택했다.

세계화 흐름에 적극 편승해 자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게 된 기적의 국가가 최빈국 탈피를 앞둔 길목에서 집권층의 욕심 때문에 혁명적 파국에 접어든 것은 충격적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시대엔 건국 기여자들에 대한 특권이 당연시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며 공정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시대다. 경기 침체로 실제 실업률이 40%에 달하는데도 유공자들은 과거를 팔아 후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려다 국민적 저항을 맞은 것이다.

방글라데시 사태는 민주화유공자법을 밀어붙이는 더불어민주당에 반면교사가 된다. 민주당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특혜 법안을 계속 추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민주화유공자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전재수 의원은 22대 국회 개원 후 같은 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4·19와 5·18의 경우 관련자들이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 예우를 받는 데 비해 유신반대투쟁과 6월 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및 유가족에 대해선 합당한 예우가 이뤄지지 않아 새 법이 필요하다는 게 민주당의 논리다.

그러나 운동권 인사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 ‘부마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법’ 등에 따라 보상을 받았고, 30년 가까이 정치권력의 핵심 역할을 했다. 반대로 장기표 선생처럼 ‘보상’ 자체를 사양한 인사도 많다. 이런 마당에 새 법을 만들어 민주화 관련자와 유가족에게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되도록 실질적 지원”을 하자는 건 이중 특혜, 특혜 대물림 시도와 다름없다. 5·18 유공자의 경우 교육·취업·의료 등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명단 공개는 거부해 논란이 여전하다.

민주당이 2027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다수당의 위력을 과시해 운동권 특권 법제화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유공자 자녀들이 일반직 공무원에 특별채용되고 공기업 등 입사시험에서도 5∼10% 가산점을 받는 것에 대해 MZ세대 취직준비생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1∼2점으로 당락이 뒤바뀌는 취업시험에서 국가유공자 가산점으로 인해 불공정이 조장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여기에 민주화유공자법이 제정되어 자녀들에게까지 취직 등의 특혜가 주어진다면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방글라데시 꼴이 날 수 있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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