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훈 연세대 겸임교수, 前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회법에 규정된 일사부재의 원칙은 이미 부결된 안건을 반복 제출함으로써 정상적인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차단하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방적으로 가결했던 채상병특검법이 7월 25일 재표결 때 부결됐는데도, 8월 임시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유사한 채상병특검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회기가 다르므로 형식상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원칙의 입법 취지를 잠탈(潛脫·교묘히 빠져나감)해 국회의 정상적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반의회주의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거대 야당이 이처럼 집요하게 떼쓰듯이 채상병특검법안을 발의하는 노림수는 무엇일까?

야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법안 발의 의향을 밝힌 것을 기화로 여당의 내분을 조장해 이탈표 몇 표만 더하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재표결 시 가결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 법안은 채상병 사망 사건의 경찰이첩 보류 지시 관련 대통령실의 직권남용 여부를 주된 수사 대상으로 하는데, 직권남용죄는 이현령비현령 남용 가능성이 큰 악명 높은 죄목이다. 공무원의 권한 행사가 위법한 경우뿐만 아니라 부당한 때에도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하므로, 정당한 권한 행사도 부당한 것으로 몰아 기소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법안이 가결되면 서울서부지검 규모의 특검이 구성되고, 야당만 특검 후보를 추천하겠다는 것이므로 야당 입맛에 맞는 특검이 실적을 내기 위해 직권남용죄를 무리하게 의율(擬律)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 수사 결과 발표 시에는 대통령도 혐의가 있다는 추론을 내릴 것이고, 거대 야당은 이를 근거로 일단 대통령을 탄핵소추 하고 볼 것이다. 탄핵소추만 되면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정지되는데, 만약 헌법재판관 9인 중 10월쯤 임기가 만료되는 3인을 국회에서 선출하지 않는다면 탄핵심리에 필요한 의사정족수 7인이 충족되지 않아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한없이 정지될 것이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거머쥔 거대 야당은 이러한 사태를 능히 초래할 수 있고, 심지어는 국정 공백 해소를 구실로 야당이 추천하는 이들로 위 3인의 재판관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후 연일 헌법재판소 주변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해 탄핵심판을 압박할 수 있고, 탄핵심판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면 야당이 원하는 조기 대선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유사한 과정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고 파면됐다. 다만, 그때는 특검이 아니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가 대통령비서실 등을 수사해 직권남용죄·강요죄 등으로 기소하면서 성급하게 대통령도 공모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 점이 다를 뿐, 그것이 탄핵소추의 근거가 됐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당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는 나중에 법원의 재판 결과 강요죄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자금 뇌물죄는 모두 무죄로, 직권남용죄는 많은 부분이 무죄 선고를 받거나 최종 수사 결과 범죄가 아님을 이유로 불기소처분됐다.

나라를 생각한다면 부득이한 경우 예외적으로 활용해야 할 특검이나 탄핵을 정쟁 수단으로 전락시킬 일은 아니다.

한석훈 연세대 겸임교수, 前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석훈 연세대 겸임교수, 前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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