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文정부 전세대출 126조원 뇌관
서민 위한다며 서민에 큰 피해
尹정부 정책 대출 역설과 닮아

정치로 부동산 정책 오염 금물
과도한 시장 개입은 실패 불러
공급 확대하고 정책대출 좨야


정부가 집값 급등에 놀라 동원 가능한 카드를 마구 내던지고 있다. 그린벨트까지 풀면서 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그래도 약발이 듣지 않자 은행 손을 비틀어 디딤돌·버팀목 대출 금리까지 0.4%포인트 올릴 정도다. 고금리 장기화로 전 세계 주택 시장이 하향 안정세인데 유독 한국만 과열되는 기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칫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정책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제일 큰 게 부동산”이라고 고해성사를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부동산만큼은 할 말 없는 상황”이라며 실패를 인정했다.

노·문 전 대통령은 뒤늦게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을 주범으로 지목하며 “대출 규제를 더 강하게, 더 일찍 못했다”며 땅을 쳤다. ‘주택의 금융화’라는 막을 수 없는 대세를 간과한 것이다. 통계 착시현상도 심각했다. 좌파 정권은 ‘서울 주택 보급률 94%’라는 신기루에 홀려 공급은 충분하다고 맹신했다. 서울에 살고 싶으면서도 경기도에서 출퇴근 지옥에 시달리는 광범한 예비 수요군에 눈을 감았다. MZ세대의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아파트)’ 수요도 무시했다. 소득 3만 달러의 신세대는 소득 1만 달러 때 지은 중진국형 아파트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처럼 ‘살고 싶은 아파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초과 수요는 항상 차고 넘친다.

뒤늦게 윤 정부가 공급 확대 카드를 빼들었지만, 시장에 별다른 감동이 없다. 그린벨트 해제를 빼고는 재탕, 삼탕이다. 특히, 신도시 카드는 입주까지 평균 13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변질돼 약발이 떨어졌다. 1기 신도시 분당·일산은 발표 3년 만에 입주가 시작됐지만, 3기 광명 시흥 신도시는 3년이 지나도록 토지 보상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8·8 부동산 대책의 재건축·재개발 촉진 역시 18개 법률의 제·개정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막무가내식 규제 완화는 집값을 띄울 뿐”이라며 손사래 치고 있다.

역대 정권마다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부동산의 정치 오염이었다. 문 정부 5년간 전세 대출이 무려 126조 원(36조→162조 원)이나 늘어났다. ‘전세는 서민들 주거’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사로잡혀 제동 장치가 실종됐다. 매년 25조 원이 넘는 추가 유동성이 전세 대출이라는 파이프를 타고 부동산 시장에 유입됐다. 이 엄청난 연료를 도화선 삼아 서울 아파트값은 두 배로 치솟았다. 서민을 위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 정부의 정책 대출도 역설적이다. 원래 정책 대출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거나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우대 금융을 일컫는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특례보금자리론 60조 원이 풀려나가 말썽을 일으켰다. 올해는 디딤돌·버팀목 대출이 집값 폭등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내 집 마련과 전세 자금을 낮은 금리로 지원해 주는 정책 대출이 집값 폭등의 뇌관이 돼 버린 것이다. 시장의 안전판은커녕 불안만 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는 윤 대통령의 25조 원 규모 소상공인 대책에 찬물을 뿌릴까 싶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를 두 달 연기해 버렸다. 8·8 대책에 대출 규제가 빠졌던 이유도 “청년, 신혼부부 등에 대해 대출을 크게 늘려주라는 대통령실 주문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가 2%대로 내려와 금리 정책을 동원해도 제대로 효과를 내기 어려운 수준이다. 조만간 미국이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내릴 전망이다. 공급 부족 속 기준금리 인하는 집값 폭등에 방아쇠를 당기는 위험한 도박이다.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전에 이미 약속한 주택 공급 확대를 차질없이 추진하고 방만한 정책 대출부터 서둘러 조여야 할 것이다.

부동산 부문에서 정부가 ‘악마화’하고 있다. 좌·우 정권 모두 정치적 논리로 집값을 통제하려다가 실패만 거듭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고금리 국면에서 집값을 안정시킬 황금 같은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상 정치가 부동산 정책을 오염시키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결국 노예의 길로 가는 이데올로기’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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