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가겠슴둥. 옥시 철에 놀러 오오. 여러 날 웃고 떠들며 방언 조사를 도와주신 아바이(할아버지)와 아매(할머니)의 마지막 인사는 이랬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땅 회룡시와 마주한 삼합진, 갈 수만 있다면 두만강을 건너 열차를 타고 한나절 만에 집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옌지(延吉)까지 버스로, 다시 옌지에서 비행기로 와야 하니 이틀이 걸리는 여정이다. 과연 이 먼 길을 옥수수 먹자고 다시 올 수 있을까?

요즘에는 옥수수가 나는 철이 별 의미가 없지만, 이들이 사는 땅과 살아온 세월을 헤아리면 그 의미가 깊다. 기차로 이 땅을 다니다 보면 가도 가도 옥수수밭과 수수밭이다. 집집마다 노란 옥수수를 엮어 말리는 더미가 보인다. 가을에 추수한 쌀이 떨어지면 보리를 수확해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마저 떨어지면 옥수수가 익어야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다. 결국 대접이 시원치 않아 미안하니 조금이라도 풍족할 때 다시 오라는 말씀이다.

옥수수는 줄기는 수수와 같지만 그 열매가 구슬 같대서 구슬 옥(玉)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수수도 굶주림을 달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만 옥수수만 못하다. 그래서인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는 옥수숫가루를 쌀 모양으로 빚어 ‘옥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데스의 험한 산지에 사는 이들에게 노란 옥수수는 땅에서 나는 황금과도 같은 존재였다.

요즘에는 워낙 대량으로 재배돼 가축의 사료나 공업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식량이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두만강을 건넌 이들, 벼농사를 짓기엔 척박하고 비가 부족한 이곳에서는 옥수수가 쌀만큼이나 귀한 곡물이었다. 옥시 철이 여러 번 지났고 옥시뿐 아니라 흰술(고량주)과 돼지발쪽(족발)을 배불리 먹여 주겠다는데도 아직 못 갔다. 기차로 서해안과 압록강을 타고 올라가 두만강을 건너서 갈 수 있다면 그때나 가능할까?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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